중앙대학교 대학원신문
인터뷰, 임근준
최종편집 : 2020.3.25 수 18:01
기획사회
군대, 내면화된 공포의 판타지사회기획 : 한국 사회의 신화를 읽다
허민호 편집위원  |  slnabro@cauo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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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4호]
승인 2006.07.03  15:4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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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동혁 / 병역거부자

1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의 이야기이다. 참전 군인들은 몸도 마음도 병든 상태로 돌아왔다. 남아 있는 건 패배자라는 낙인과 엄청난 실업, 빚더미였다. 이 때 나치가 등장한다. 나치는 강한 독일을 약속했다. 침략전쟁으로 군수산업을 키워서 실업문제를 해결했고, 전국가적인 군사화로 소위 기강을 다잡았다. 국민들의 패배의식을 이용하는 선동이 제대로 먹혀들었는데 초기부터 나치를 가장 열렬히 지지했던 사람들은 참전 군인들이었다. 우리의 한국전쟁, 베트남 전쟁 경험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오늘날 각종 우익 집회에서는 군대, 경찰 관련 조직들이 가장 확실한 물리적 힘이 되고 있다. 그 눈빛에 흐르는 것은 살기와 배타적 우월감이다.
모든 전쟁에서 이와 비슷한 메커니즘이 작동한다. 최선이 아닌 줄 알아도, 올바르지 못한 선택인 줄 알아도 결국엔 자신을 긍정하게 만드는 고약한 것이 전쟁이다. 그 전쟁을 수행하는 곳이 군대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군대에서 단지 ‘훈련’만을 배웠을 뿐이라고 말하는데 정말 그러한가. 그리고 그 훈련은 뭘 준비하는 훈련이었나. 자신이 개입될 경우 잘못된 것을 긍정하라고 가르치는 곳이 군대다. 전쟁을 하고 있지 않아도 전쟁을 준비하고, 항상 전쟁이 코앞에 닥쳤다고 말한다. 긴장감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공포심이 필요하다. 공포심을 심어주기 위해서는 거짓말이 필요하다. 적대감도 필요하다. 명분도 있어야 한다. 그런데 그 거짓말들이 군대를 거쳐나오면 항상 진실로 둔갑한다. 아주 냉정하게, 어지간해서 군대가 올바르기는 매우 어렵다. 세상에 정의로운 싸움 따위가 사라진지는 오래되었다. 요즘 전쟁은 그야말로 돈이 오가는 파워 게임이다. 뒤에서는 손익분기점을 따지기 위해 정신없이 계산기 자판을 두드린다. 이런 현실을 감추기 위해 말도 안되는 명분이 따라다닌다. 평화, 민주주의, 인권, 자유수호 등 좋은 건 전부 그 명분이 된다. 그런데 그 좋은 가치들이 가장 쓰레기 취급 받는 게 군대다.

판타지로써의 신화
국방비만으로도 북한의 전체 GNP를 넘어서는 상황인데 우리가 더 힘이 없다고 말한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그렇게 믿는다. 아니 믿고 싶어한다. 군대를 다녀와야 사람이 된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많은 것 같다. 이번에는 좀 찝찝하지만 그래도 역시 그 시간 동안 유익한 무언가를 배웠고 덕분에 이전보다 성장했다고 믿는다.
신화는 판타지다. 사람들은 신화를 만들어 낸다. 그것이 좀 더 세련되면 종교가 된다. 종교는 나름대로 논리적 체계를 갖추고 있지만 신화는 상징성이 강하다. 신화가 신화인 줄 알면서도 믿는 행위, 거기에는 어떤 상징성을 지켜내고자 하는 열망이 있다. 군대가, 전쟁이, 군대가, 국가가, 남성성이, 조직이, 위계질서가, 타율이 우리를 지켜주고 사회를 유지시키고 있다는 믿음이 그것이다.
군대에 관한 신화 중 가장 견고한 것이 군대가 평화를 지켜준다는 믿음이다. 어떻게 보면 맞는 말이다. 현실적으로 군대 없이는 평화를 지킬 수 없다는 게 인류의 통념이니까. 지금 당장 군대를 없애면 불안감과 공포심을 이겨낼 수단이 없어진다. 힘의 균형이 국제평화를 유지하는 데는 필수적인 요소다.
그렇지만 이 말은 전부 잘못된 말이다. 아니, 앞뒤가 바뀐 말들이다. 군대가 평화의 선결조건이 아니라, 평화가 깨지고 나서부터 군대가 생겼다. 서로 군사력을 줄여나가면서 균형을 유지하는 게 아니라, 군사력을 키워나가면서 균형을 유지하려는 욕망이 너무 크다. 그래서 군사비는 갈수록 늘어나고 군대의 역할은 계속 확대된다. 갈수록 비싸고 세련된 무기들이 등장하고, 언론은 계속 잘한다고 부추기고, 사람들을 속이는 수법도 점점 단수가 올라간다. 냉전을 떠올려보자. 한국전쟁을 신호탄으로 시작된 냉전은 베트남 전쟁으로 막을 내렸다. 대략 20년이 조금 못되는 그 기간 동안 국지적인 지역분쟁은 더 적었다고 한다. 한마디로 미국과 소련 간의 엄청난 군비확장과 핵무기 경쟁이 너무나 큰 공포심을 불러내서 도저히 싸울 엄두를 못낸 것이다. 그러니까 백번 양보해서 군대가 평화를 지켜준다고 하자. 그래서 그 결과는 어떤 것이었나. 군비확장에 들어간 노력들을 생각해보자. 또 공포심이 만들어낸 사회 분위기는 어떠한가. 군대와 무기를 유지하기 위해 들어가는 엄청난 비용과 부작용들을 생각해보자. 그러다가 힘의 축적이 결국 베트남 전쟁으로 폭발했을 때 그 무시무시했던 상황도 떠올려보자. 그리고 아무 생각없이 거기에 개입된 한국의 처지나, 그걸 무슨 대단한 경사라도 되는 양 칭찬하기 바쁜 우리의 자화상은 어떠한가.
만약 당신이 9·11 테러 당시 미국에 거주하는 아랍인이었다고 가정해보자. 무서워서 식당에나 갈 수 있겠는가. 힘으로 지켜내는 평화란 그런 것이다. 살얼음판을 걷듯 불안한 평화. 그래서 평화 아닌 평화. 항상 누군가를 감시하고 의심하고 미워하면서, 서로 너 때문에 불안하다고 하면서 자기는 계속 크고 성능 좋은 무기를 바꿔든다. 그러니까 국가보안법도 계속 살아있고, 테러방지법도 생기고, 군비는 계속 늘고, 군대 내 인권은 지켜지지 않고, 첨단무기는 자꾸만 늘어난다. 왜 전쟁이 없다는데? 군대가 평화를 지켜주는 데 대체 왜? 전쟁만 안 난다고 평화로운 게 아니다. 더 나아가 군대가 이런 말뿐인 평화마저도 지켜주지 못하는 경우가 더 많다. 적극적으로 평화를 깨는 경우는 더 많다. 당신도 생각해보라. 20세기 이후에 떳떳한 전쟁이 한 번이라도 있었는가. 그렇다면 이제 진정한 평화를 위해서는 이 잘못된 신화를 깨는 일이 필요하지 않을까. 군대를 축소해 나가는 게 무조건 인류에게 유익하다는 원칙을 세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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