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5호 [Code읽기] 여러분시선이 되어버린 인간-영화 '나쁜 남자'

최정인 / 영화학 강사

오랫동안 영화 속의 여성인물은 지배적인 남성(남자배우와 남성관객)의 시선에 수용되어 환상에 투사되고 이에 따라 양식화되어 왔다. 또한 여성은 ‘남성적 응시’의 수동적인 대상인 동시에 시각적 즐거움을 위한 볼거리(spectacle)로 남성 욕망을 수행하고 기대에 부응하는데 기여했다.

김기덕 감독은 최근작 <나쁜남자>에서 또다시 여성을 쾌락적 시각 속에 던져놓고 몸을 벗겼다. 영화의 배경을 정육점 조명의 유리문 안에 여성을 상품으로 ‘전시’하고 합법적으로 ‘구경’할 수 있는 사창가로 설정함으로써 관객들의 ‘공적(公的)시선’을 조장하며, 관객들을 앞으로 전개될 거듭된 파행의 공모자로 받아들인다. 물론 그것이 다가 아니다. 창녀들이 어떤 누구의 눈도 미치지 못할 것이라 믿었을, 사창가의 목적이 이루어지는 개인적 밀실까지도 내밀하게 바라볼 수 있는 ‘사적(私的)시선’이 스크린을 뒤덮는다. 여기쯤 이르게 되면 이 영화가 여성을 끊임없이 지배 혹은 소유할 수 있는 하나의 개체로 여기고자 하는 의도를 눈치채야 한다. 여성은 욕망의 능동적 주체가 되어선 안되고 쾌락의 대상으로 재현되기 위하여 남성의 시선에 속박되고 지배되어야 한다.

<나쁜남자>의 한기가 벤치에 나란히 앉은 여대생 선화를 일방적으로 응시하는 눈길에서, 군중에게 몰매를 맞으면서도 선화에게 떼지 않는 시선에서, 이후에 지속될 그녀를 향한 폭력의 조짐을 보인다. 감독은 구도적 연결상, 여대생 선화가 서점에서 에곤 실레의 그림을 아쉽도록 탐하는 눈길이나 한기가 그녀를 취하고 싶어하는 절실한 눈길이 다름없음에 대해 역설을 꾀하지만 받아들이기엔 무리가 따를 것이다. 곧 대상과 주체로, 주변과 중심으로 인물의 역할변화를 경험해야 하기 때문이다.

기의 시선(gaze)은 명백한 권력이다. 창녀로 몰락한 선화의 매춘을 일방향 거울너머로 지켜보는 한기의 관음행위는 여성을 개체적 타자화로 전락시켜 버리는 위험한 폭력으로 작용한다. 한기가 장악한 일방적인 시선의 위치는 거울너머의 공간을 알 리 없는 선화의 우위를 점령하며 계급적 헤게모니를 취득하게 된다. 한편 시각적 권력을 얻은 한기는 부하들이 몰래카메라를 이용하여 다른 창녀의 정사를 엿본 행위에 대해서 무참한 폭력으로 단죄하면서 자신이 선화를 욕망하기 위한 관음행위에 대한 관대함을 공고히 다져나간다.  

관객들과의 공적시선이 머무는 사창가 거리에서 고정되어버린 한기의 시선 위치는 이미 하나의 개체적 이미지가 되어버린 선화보다 물리적으로 높은 곳에서 그녀를 지배한다. 계급적 권력관계가 물리적인 위치관계로 보이면서 한기의 절대성이 강조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결코 시선의 주체가 되지 못하는 선화는 일방향 거울을 사이에 두고 한기와의 시선이 충돌된 이후 그의 권력에 동참한다.  

그의 정당화 될 수 없는 모든 권력행사의 이유가 실은 선화에 대한 ‘사랑’이었다는 시급한 상황수습은 이미 늦었다. 그저 한기가 ‘나쁜남자’이기 때문에 사랑이라는 이름의 부당한 미덕을 이용한 모든 상황이 개연성을 가지며 가능하리라 여긴다면 이 역시 괘씸무도한 하나의 발상일 뿐이다. 이것이 김기덕 감독의 개인적 취향이든, 이를 긍정하는 남성 일반 공공의 성향이든 말이다.
 

저작권자 © 대학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