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5호 [문화취재] 토론회 <음란한 것들을 상상하다>
음란한 진보와 진보적 음란

최남도 편집위원

음란물에 대한 논의는 이미 오래 전부터 논의돼 온 주제 중의 하나이다. 예술이냐 외설이냐라는 이분법적인 논의에서 ‘표현의 자유’에 관련된 논쟁까지. 그러나 드러내기보다는 감추기에 능숙한 탓인지 음란물 혹은 음란함에 관련된 논의는 제자리를 도는 듯한 느낌을 떨치기 어렵다. 음란한 것은 진보적일 수 없는가? ‘표현의 자유’를 주장하면서도 성에 관련된 정직한 표현에 있어서는 꼬리를 내리는 진보적이라 칭해지는 문화예술인사들이 보여주는 괴리.

이러한 질문에 대한 대답이 될 만한 토론회가 3월 2일 아트선재센터에서 열렸다. (사)한국독립영화협화, 문화개혁을 위한 시민 연대(이하 문화연대), 딴지일보의 공동주최로 열린 이번 토론회는 ‘제32회 독립영화 관객을 만나다’의 부대행사로 열렸다.

토론회는 강내희 문화연대 상임집행위원장 대행 겸 정책기획위원장(본교 교수)의 ‘누가 음란을 두려워하랴’라는 제목의 주제발제로 시작되었다. 주제발제를 통해 강내희 위원장은 “음란물을 반대하는 세력에는 다양한 스펙트럼이 존재하며 이 다양한 스펙트럼들은 진보와 보수의 분류를 초월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토론회에는 다양한 문화 영역에서 활동하는 활동가들이 참가해 토론회를 더욱 풍성하게 만들었다. 권은선 씨(영화평론가)는 ‘표현의 자유’와 함께 그 속에 도사리고 있는 남성 권력에 대한 강력한 문제제기를 했다. 또한 “음란물들의 대부분이 남성을 대상으로 제작되고 있는 상황 속에서 제작 과정과 재현 방식에 있어 여성에 대한 착취가 존재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병수 씨(우리만화연대 사무국장)는 청소년 보호라는 명목으로 실시되는 음란물에 대한 규제가 작가의 자기 검열 체제를 강화하여 결과적으로는 만화가들의 창작의욕을 상실케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날 토론회에서는 토론자와 질문자들이 자신의 영역에 대한 풍부한 지식과 문제 의식을 보여주어 활발한 질의·응답과 토론이 이루어졌다. 그러나 토론이 구체적인 운동의 방향과 이후의 전망과 대안에 대한 논의로 이어지지 못했고, 서로에 대한 이해의 폭이 좁아 깊이있는 논의가 이루어지지 못한 점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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