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3호 [동시대이야기] 아프간의 여성들
그녀들은 아직 출옥하지 않았다

이유진 /여자와(http://www.jeozawa.com) 기자

지난 10월 15일부터 27일까지, 12박 13일 동안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취재하기 위해 파키스탄을 다녀왔다. 누군가는 이렇게 질문할지 모른다. 전쟁은 아프간에서 벌어졌는데 왜 파키스탄으로 취재를 떠났는가 하고.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아프간의 탈레반 정권이 외국 기자들의 입국을 전면 금지했기 때문이다. 그런 까닭으로 전 세계 2천여명이 넘는 기자들이 이웃나라인 파키스탄의 수도 이슬라마바드에 몰려들었다. 한국전쟁 당시 일본이 경제부흥의 기회를 얻었듯, 파키스탄 역시 이웃 이슬람 국가의 전쟁으로 ‘경제 특수’를 누리고 있었다. 이슬라마바드의 외국 기자들을 상대로, 아프간으로의 입국 루트를 보장하는 많은 ‘패키지 상품’들이 비공식적으로 은밀히 거래됐다.

그나마 아프간으로 입국을 시도하는 기자들은 그런 ‘상품’을 구입할 만한 경제력을 가진 사람들에 국한되었다. 전쟁통에서도 통하는 자본의 힘이 얼마나 막대한 것인지 새삼 실감했다. 아프간으로 밀입국을 기도한 기자들은 하나같이 부르카(Burkha, 아프간 여성들이 입는 전신가리개)를 입고 아프간 여성으로 변장했다. 바로 이점, 기자들이 아프간 여성들이 입는 옷을 입고 밀입국을 시도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머리 끝에서부터 발끝까지 온 몸을 가리는 일종의 장옷인 부르카는 여성의 은폐된 자유와 여성에 대한 억압 그 자체를 상징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탈레반이 여성들에게 강제적으로 입힌 부르카는 탈레반 정권 자체를 약화하는 아이러니를 낳았다.

아프간 여성들의 해방을 위한 전쟁인가

미국의 지원을 받은 북부 동맹이 아프간의 수도 카불을 장악하고 탈레반 정권이 퇴각하자 아프간의 수도 카불에서는 부르카를 벗어던진 여성 2천여명이 거리행진을 했다고 한다. 그 직후인 지난 11월 17일, 부시 미 대통령의 부인인 로라 부시는 기다렸다는 듯 연설을 시작했다. “이제 아프간 여성들은 환호하고 있다.” 그는 이 연설에서 “아프간 여성들은 지금까지 말할 수 없는 고통을 감내해왔으며, 테러집단의 목표 중 하나가 무자비한 여권억압이란 점도 증명됐다”고 말했다. 마치 아프간 여성들의 해방을 위해 미국이 전쟁을 시작했다는 듯이. 아프간 여성해방의 수호자가 바로 미국이란 것을 강조하기라도 하듯.

CNN 역시 아프간 여성들의 모습을 헤드라인에 내세우며 그들의 ‘해방감’을 부각했다. 그러나 로라 부시는 아프간 여성의 해방에 대해 말을 꺼낼 자격이 없다. 아프간여성혁명동맹(이하 RAWA)은 지난 19일 CNN과의 화상회견에서 “미국의 지원 아래 카불을 점령한 북부 동맹 역시 탈레반과 비교할 때 여성을 억압한다는 점에서 다를 바 없다”고 지적했기 때문이다. 지난 10월 23일 이슬라마바드에서 만난 RAWA의 어느 조직원 역시 같은 생각을 갖고 있었다. “며칠 전 카불의 한 회원으로부터 미국 포탄이 주택가에 떨어져 어린이 2명을 포함, 8명이 숨지고 10여명이 부상당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미국은 아프간에 집중포화를 퍼붓는 동시에 식량을 떨어뜨린다. 미국은 아프간 여성의 자유와 해방을 위해 전쟁을 하고 있다지만, 그것은 속임수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이슬람권 여성의 현실은 과연 어떤가. 이슬람권의 여성탄압에 대한 이야기들이 전 세계적인 화두로 떠오른 것은 불과 몇 달 전, 지난 3월 뉴욕에서 열린 유엔여성지위위원회에서였다. 유엔여성지위위원회는 일년에 한번씩 열리는 여성문제에 관한 가장 큰 정기회의다. 이 회의에서 파키스탄에서는 강간을 당한 여성이 강간을 입증하지 못하면 간음으로 처벌받아 가족들에게 죽임을 당한다는 사실이 보고됐다. 모로코에서는 일부다처제를 금지하는 법안이 회교도들의 반대로 무산됐고, 사우디아라비아에서는 여성이 운전하는 것을 법으로 금지하고 있다. 이집트 여성들은 1950년대에야 비로소 투표권을 행사할 수 있었고, 쿠웨이트의 여성들은 아직도 투표권이 없다.

벗어던진 부르카,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

그러나 뭐니뭐니해도 세계에서 가장 큰 여성감옥은 다름아닌 아프가니스탄이다. 아프간의 여성들은 지난 96년 탈레반이 아프간을 장악한 직후 교육과 노동권 등 가장 기본적인 사회적 권리를 뺏긴 채 생활해야만 했다. 외출시엔 집안의 남성을 대동해야만 했고, 부르카를 쓰지 않으면 길에서 풍속단속경찰에게 매를 맞을 수도 있다. 텔레비전시청, 음악감상, 영화감상이 금지된 것은 물론이고, 발목만 보여도 매를 맞았다. 뿐만 아니라 아프간 여성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가족들을 제외한 어떤 남자와도 말을 해서는 안 됐다. 지난 11월 13일, 아프간의 북부동맹은 탈레반을 축출하고 수도 카불을 장악한 후 여성들의 교육과 취업을 전면 허용했다. 아프간의 텔레비전 수상기에는 5년 만에 여성이 등장했으며, 부르카를 벗어던진 여성들의 모습이 거리에 보이기 시작했다. 이번 전쟁으로 인해 아프간 여성들이 예전과 비교해 좀더 나은 삶을 살 수 있게 된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그 이후에 그들을 기다리고 있을 위협에 대해선 누구도 얘기를 하지 않는다. 아직 탈레반을 위시한 이슬람원리주의자들은 아프간에 건재하고, 여성들의 대다수는 글을 읽지 못한다. 글을 읽지 못하는 것은 자신들의 처지를 자각하며 문제점을 해결할 길이 그만큼 멀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 의미에서, 아프간 여성들이 부르카를 벗어던진 것은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 이제는 그들 스스로 생존과 자유, 권리를 위해 자생력을 키워야 하는 중차대한 과제가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탈레반 정권도, 미국도 찬성하지 않는다. 우리는 우리의 인간적인 삶을 바라고 있을 뿐이다.” 이슬라마바드에서 만난 한 아프간 여성의 말은 기형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이 전쟁에 대한 수많은 논쟁에 일침을 던지고 있다. 세상에서 가장 큰 여성감옥, 아프가니스탄에서 여성들은 아직 출옥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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