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8호 [문화쟁점] 한류열풍, 동조 - 찬양 - 고무?

고길섶 / 문화비평가

문화라는 것들은, 그것들이 똥구멍에서 나온 것이건 성기에서 나온 것이건 흐르고 또 흐르는 것이다. 그러다 죽기도 하고 더 번성하기도 하고. 대중문화는 특히 더. 그러다 보면 어딘가에서 환장하고 미치는 수용자들이 집단적으로 형성하는 것이야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다. 특정한 문화 생성물에 미쳐보는 광기도 아름다운 일이기도 하다. 극한으로 질주해볼 때 비로소 그 미감을 더 진하게 느껴볼 수 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나 혼자만이 그러는 것이 아니라 떼거지로 독특한 아비투스를 형성할 때 그것은 집단희열감을 넘어 어떤 우월감 혹은 승리감마저 보태주지 않는가. 이른바 ‘한류’(韓流)라는 것도 그런 것일까.

그런 것일테지. 베트남의, 홍콩의, 대만의, 중국의, 심지어는 일본의 청소년들이 한류열풍에 휩쌓여 있다니 말이다. 물론 인구통계학적으로 볼 때는 소수에 불과하겠지. 정확한 통계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나라 대중매체의 선동적 태도에 비추어볼 때 혹은 감으로 미루어 짐작해 보건대, ‘열풍’은 거품일 수도 있고 허수일 수도 있다. 물론 그것들은 다 근거있는 것들이다. 서구의 오리엔탈리즘도 근거있는 이미지 조작이었듯이 말이다. 양평에서 있었던 안재욱 여름캠프에 동아시아 청소년들이 250여명이나 참여할 정도면 근거는 분명하다. 허나, 지난 8월의 안재욱, 김희선, 차인표, 김건모, 이정현 등의 홍콩공연은, 순 홍콩 팬들만 천명 정도 모여들었다니, 그야말로 실패 아닌가. 지난 1월경에 중국대륙을 흥분시킨 것은 내몽골의 여가수 스친거르러였다니, 한류는 한류(寒流)일 수도 있다. 그렇다고 내가 지금 한류열풍의 근거없음을 주장하려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또한 한류열풍을 더 근거있게 만들자고 주장하는 것도 더욱 아니다. 나는 다만 한결같이, 특히 방송에서나 문화연구자마저도 한 목소리로 한류열풍을 지속시켜야 할 방안을 강구하자는 데에 한기(寒氣)를 느낄 뿐이다.

문화관광부, ‘한류 위를 걷는 남자’
거기에다 문화관광부가 팔뚝걷고 나설 참인 모양이다. 김한길 장관이 어느새 한류열풍의 주자 연예인들을 접견하고 고무시켰다. 그도 장관직 때려치우고 ‘한류 위를 걷는 남자’ 따위의 소설을 써 한류열풍에 짭잘한 재미를 보고싶은 속내를 품어보는지도 모르겠다. 문광부는 중국 등지에 ‘한류 체험관’을 설치한다나 어쩐다나. 젠장, 그런 쓰잘데기 없는 데 돈을 쓰려하니 문화예산 삭감이나 당하지. 그 돈으로 국내 창작자들 지원이나 잘 해줘라! 중앙일보가 한류를 산업화하자고 사설에서 주장한 바 있듯, 문화관광부가 한류열풍에 방방 뜨는 것은 그놈의 경제논리 때문이다. 문화관광부의 문화정책은 문화는 없고 돈만 아는 정책으로 추진되고 있다. 물론 문화산업적 정책 자체를 무용하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문화산업이라는 논리로 ‘문화=돈’이라는 공식을 수립하려는 것처럼 어리석은 일이 어디 있단 말인가.

  오히려 문화를 돈 공장으로 보려는 태도들에 맞서 싸워야 하는 것이 문화관광부의 자존심 아닌가. 우리나라의 문화를 망치게 하는 것도 부족해 남의 나라의 문화마저도 망치게 할 작정은 포기하는 게 좋다. 일본 대중문화 개방은 그토록 애지중지 해왔으면서도 우리 것이 저쪽으로 쏴대는 것에는 거리낌없어 하려하니 참으로 우스운 꼬락서니다. 설령 문화관광부가 한류열풍에 관심을 가진다면 우선 한류를 주도하는 우리의 대중문화와 그 생산자들인 연예인들의 문화적 정체성에 대한 검토를 수행해야 할 것이다. 돈만 보고 환장하지 말고. 그쪽의 대중들이 우리의 대중문화에 열광하는 것까지 우리가 뭐라 할 수 없다.

그것은 국경을 떠나, 문화적 질감의 문제도 일단 접어놓고, 문화적 차이의 향유라는 권리가 그들에게도 있기 때문이다. 우리도 80년대에는 홍콩영화에 뿅간 기억도 있지 않은가. 대만의 어떤 청소년은 우리나라 한 텔레비전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한국의 대중가요는 다르다”고 말한 바 있다. 그 차이라는 것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그러나 그/그녀들이 열광하는 우리의 대중문화가, 그리고 그/그녀들이 느끼는 차이라는 것들이 문화적 질감들을 충분히 함유하고 있는지는 분명 따져보아야 할 일이다.

대중문화 풍토에 대한 성찰 필요
우리나라의 TV 드라마들과 대중가요들이 선도하는 대중문화는 국내에서 지속적으로 비판 받아오지 않았는가. 문화연구자 조한혜정 교수는 <한겨레>의 최근 칼럼에서 때를 놓치지 말고 투자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세계적인 경쟁력을 가진 문화상품을 기대하면서 말이다. 그러나 그녀 역시 곧바로 회의를 품는 것이 “우리 내부에 훌륭한 문화적 생산자를 길러낼 수 있는 토양이 있는지의 문제”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때를 놓치지 말고 투자를 해야 한다는 식의 주장은 곤란해 보인다. 게다가 “자생적 젊은이 문화의 메카인 홍대앞에 아시아 대중문화 생산소를 차리는 등”의 “문화산업” 투자를 적기에 하자는 주장도 성급해 보인다. 문화관광부의 돈의 논리 시각과 별다름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다름이 있다면 홍대앞 젊은이들 문화를 한류열풍의 지속적 기지의 하나로 삼자는 점이다.
  그러나 내 생각으로는 문화산업론에 입각해서 홍대앞을 아시아 대중문화 생산소로 차리자는 것은 지나친 발상이다. 홍대앞 젊은이들 문화는 문화산업류와는 다른 기류를 타야 한다. 그것은 지금 한류열풍을 주도하고 있는 대중문화적 주류하고는 거리가 있거나 그것에 저항적이기조차 하다. 올해 독립예술제가 그곳으로 달려가고 있고 퀴어문화제가 그곳에서 열린다. 저항하고 생성하는 소수문화들이 물결쳐지는 장소는 그 장소성에 걸맞는 공간적, 문화적 정체성들을 업데이트하고 횡단시키도록 해야 한다. 홍대앞이 아시아 대중문화 생산소로 발전하려면 바로 그것에 근거하고 그것들을 교류하는 것으로서, 그리하여 (동)아시아 대중문화를 새롭게 탄생시키는 것으로서여야 되지 않을까.

  지금의 한류열풍은 연구되고 공론화될 필요는 있다. 그러나 그것은 눈덩이처럼 커지게 하는 돈계산에 의해서가 아니라, 혹은 어떤 우월감이나 승리감에 기초해서가 아니라, (동)아시아지역의 지역적/민족적 차이들에 의한 새로운 문화적 소통과 연대의 기초를 다져야 한다는 맥락에서이다. 그러므로 지금과 같은 한류열풍은, 서구에 대항하는 것으로서만이 아니라 아시아지역 내부관계의 탈식민화 문화정치적 차원과 연관되는, 그리고 우리 자신의 대중문화 풍토에 대한 성찰을 필요로 하며, 그 기류도 달라져야 한다. 아무런 비판도 없는 한류열풍 ‘동조-찬양-고무’는 썩은 피로 고약하게 고인 똥구멍을 그/그녀들에게 들이대며 수혈시키자는 것에 다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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