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9호 [부킹 앤 북] 뉴욕과 유럽을 오가며, 문학과 영화를 오가며
폴 오스터:
『뉴욕 삼부작』(웅진),
『우연의 음악』(열린책들),
『굶기의 예술』(문학동네)

이상용 편집위원

굳이 여러 외국 소설가들 중 그를 선택한 것은 웨인 왕이 연출한 <스모크>의 자욱한 연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스모크>의 담배 맛이 아쉬웠던지 왕과 오스터는 의기투합하여, 오기(하비 카이틀)의 담배 가게를 다시 운영했다. 6일만에 자유롭게 만든 <블루 인 더 페이스>는 극장 상영없이 최근 비디오로 국내에 출시됐다. <스모크>의 후일담이 못내 그리웠다면 담배, 야구를 둘러싼 뉴요커들의 일상에 다시 젖어들면 된다. 그의 영화 인연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그는 왕과의 작업이 끝난 후 <룰루 온 더 브릿지>라는 새로운 시나리오를 빔 벤더스에게 보냈다. 물론 빔은 대만족을 했고, 오스터의 이력에 또 하나의 각색 경력이 추가될 뻔했다.

그러나 그의 소설들처럼 우연은 엉뚱하게 찾아왔다. 빔 벤더스가 시나리오를 받은 며칠 후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이 주로 “영화에 관한 영화”를 만들어왔다는 사실을 깨닫고 오스터의 시나리오가 두려워진 것이다. 사실을 전해들은 오스터는 오랜 고민 끝에 자신의 연출 의사를 한 장의 팩스로 보냈다. 1분 후 빔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방금 전 직접 영화를 만들어 보면 어떻겠느냐고 설득해 볼 참으로 편지를 썼다가 찢었다”는 것이다. 오스터는 97년에 칸 영화제 심사 위원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일개 시나리오 작가가 어떻게 칸 심사위원이 될 수 있느냐고 의아해할지도 모르지만 그의 소설은 유럽에서도 명성이 높다. 다분히 지적인 소설 스타일은 사실 유럽작가들로부터 많은 영감을 받은 것이다.

그가 좋아하는 작가들은 카프카, 베게트, 자베스와 같은 대부분 유대계의 소설가들이다. 이들에 대한 평을 모아 『굶기의 예술』이라는, 국내에서는 최승자의 손으로 번역된, 산문집을 내기도 했다. 그의 소설이 대부분 정체성을 찾는 한 인간의 내면풍경을 다룬 것처럼, 이들이 뿜어내는 정체성의 혼란과 탐구에 오스터는 운명적으로 끌리는 것 같다. 형식적으로도 마찬가지다. 혹자는 그를 ‘탐정소설갗라고 부른다. 비록 변변한 추리소설 하나 쓰지는 못했지만 그는 빈번히 추리소설의 기법을 차용하고 있다. 그것은 정체성을 찾는 과정이기도 하다. 자신의 앞에 놓여진 정보들을 가지고 한 사람의 일생을 유추하는 것은 소설가들에게는 매혹적인 주제가 아닐 수 없다.

출세작 『뉴욕 3부작』 이후 대중적인 인기와 비평적인 평가를 한 몸에 받아왔다. 그렇지만 시세에 영합하여 문학의 본질을 왜곡한 적은 없다. 가장 최근작인 99년도의 『팀벅투』를 워싱턴포스트 ‘북월드’ 서평담당자들은 ‘올해의 우수작’ 중의 하나로 꼽았을 정도로 활동은 왕성하다. 그 중 최근에 출간된 『우연의 음악』은 막대한 재산을 상속받게 된 한 남자를 다룬다. 그는 유산의 대부분을 자동차로 도로를 질주하는 데 다 써버리고, 마지막 돈을 우연히 한 남자의 포커판 자금으로 대준다. 그러나 그의 도박은 실패해버리고, 남은 빚을 탕감하기 위해 부호의 집에서 벽을 쌓는 의미 없어 보이는, 그러나 보람을 느끼는 노동을 시작한다. 마치 마술과도 같은 이 비현실적인 이야기는, 그러나 한 개인의 삶에 대한 강한 애착을 통해 현실에서 벌어질 것만 같다.

『공중 곡예사』(원제 Mr. 버티고)의 이야기는 한층 우화에 가깝다. 물위를 걷게 해 주겠다는 제안을 따라 한 남자를 따라간 소년이 겪게 되는 모험담은 마술적 리얼리즘 계열의 소설을 연상시키고도 남음이 있다. 문화평론가 정윤수는 “부글부글 끓어오르던 모든 열정과 계획이 순식간에 붕괴되었다면 오스터만한 술친구는 따로 없다.”라고 했는데, 그 점에 전적으로 동의를 표한다. 매번 그의 작품은 인생이 붕괴되는 지점에서 다시 출발선을 긋는다. 그것은 허무의 심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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