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1호 [문화취재] 제 4회 부산국제영화제 현장에서
영화의 바다에서 띄우는 편지
‘부산’과의 재회, 개막식


 

이상용 편집위원



열차를 놓쳐 허겁지겁 다음 열차를 집어타고 부산에 도착했다. 날씨는 조금 쌀쌀. 예상대로 해운대로 가는 길은 빈틈이 없었다. 개막작은 <박하사탕>. 지면을 통해 여러 번 소개한 적이 있었지만 완성된 작품을 보는 것은 나 역시 처음이다. 1999년에서 1979년으로 20년의 세월을 거슬러 올라간다는 설정 속에는 영호라는 인물을 통해 한국의 현대사를 들여다보려는 감독의 의도가 숨어있다. 사실 이러한 의도자체는 새로운 것이라고도 할 수 없다.

  대부분의 언론은 관례대로 호의적인 평을 내놓았지만, 냉정하게 말해 20년의 시간을 들여다 보기에는 다소 무리가 많은 작품이다. 영호라는 인물이 어째서 폭력적으로 변해갔는지를 들여다 보는데, 80년의 ‘광주’가 원인이 된다는 사실은 80년대 후반의 문학들이 여러 번 다루었던 소재이기도 하다. 당시에도 이러한 과정 속에서 벌어지는 산문의 상투성을 여러 평자들이 눈감고 지나갔지만, 2000년을 앞두고 이러한 도식에 눈감을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이창동은 그의 이력대로 여전히 80년대에 등장한 새로운 소설가군의 의식을 그대로 지니고 있다. <초록 물고기>가 영화라는 것을 인식해 애써 이러한 면모를 비켜갔다면, 그는 다시 ‘녹천에는 똥이 많다’라는 작품을 쓰던 시절로 돌아갔다. 그래서인지 영화적이기보다는 문학적인 장치가 많다.(이것을 어떻게 글로 설명해야 하지!)

  둘째날, 중국과 리얼리즘

  벌써 서울이 그리워진다. 다른 편집위원들은 부산으로 급파된(자의든 타의든) 나를 부러워하겠지만 금요일이어서 그런지 의외로 극장은 한산하다. 오늘 결심하고 본 것은 미조구치 겐지의 <우게츠 이야기>. 굳이 설명하자면 전설의 고향과 비슷한 작품이다. 갓 무성영화를 벗어난 시기에 만들어진 작품인데 놀랄 만큼 카메라의 움직임이 아름다웠다. 왜 일본인들이 그렇게 작은 것에 집착하는지를 옛날 영화에서 확인한다는 것은 새삼스럽다. 오후에는 장 위엔의 <17년후>를 보았다. 한때 중국에서 힘들게 영화를 만들던 그가 이제는 외국의 자본을 들여 여유 있게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이 반가웠다. 이야기는 단순하다. 슈 후잉은 실수로 이복자매를 죽이고, 17년간 옥살이를 한다. 출감을 몇 달 앞두고 국가의 배려로 설을 보내게 된 슈 후잉과 가족의 상봉, 그 과정의 길찾기를 그린 이 영화는 중국식 리얼리즘의 최근 경향을 보여준다. 국내에서도 개봉된 적이 있는 최건의 이야기를 다룬 <북경 녀석들>과 비교해보면 훨씬 정제되어 있고, 너무나 깔끔하다.

  이러한 현상은 최근 중국과 대만 영화의 전반적인 분위기다. 리얼리즘은 이들이 오랫동안 지녀온 무기이자 정공법의 돌파방법인데, 부산에 온 영화들을 보면 이러한 분위기는 절정에 다다른 듯 하다. 그것도 단순한 이야기와 감동을 추구하는 다분히 1차적인 영화들. 크게 흠잡을 수도 없지만 그렇다고 전적으로도 공감하기 어려운 수위는 일본 영화 <철도원>에서도 볼 수 있는 특징. 단순한 시간과 공간, 그리고 하나의 이야기를 통해 동질적인 시간을 회복하려는 듯한 이들의 복고적인 분위기는, 밀레니엄 시대를 맞이하여 선보이는 또 하나의 역현상이다. 서울에 올라갔을 때 개봉하게 될 폐막작인 <책상서랍 속의 작은 동화>에서도 이러한 현상은 마찬가지. 연구해 볼만한 대상이다.

  셋째, 넷째날 그리고 미리 본 일본 영화들

  주말에는 찾아온 손님들 덕분에 영화보다는 다른 일에 신경을 많이 썼다. 그 와중에 인도 영화 한편을 보았는데, 20세기의 아시아 영화를 대표하는 걸작으로 꼽은 작품이었지만 그러기에는 다소 실망스럽다. <구름에 가린 별>을 만든 리트윅 가탁은 당시로는 새로운 기법을 구사하였다고 했지만 우리의 5, 60년대 영화와 비슷하다. 하긴 이 영화가 만들어진 59년도를 생각한다면 그다지 뒤쳐질 것도 없는 작품이지만 정말 보고 싶은 인도 영화는 3년 뒤에 만들어진 <길의 노래>. 이 영화의 영향을 받았다는 압바스 키아로스타미의 신작 <바람은 우리를 데려다 주리라>는 매너리즘에 빠져버렸지만(그는 점점 시인들의 시를 인용하면서 대사를 가득 메운다), <길의 노래>야 말로 인도식 리얼리즘의 정수가 서려있다.

  그리고 곳곳에 들리는 소식은 한국 영화의 인기다. 특히 <오발탄>은 외국인 게스트들이 가장 보고 싶어하는 작품. 이 영화 역시 한국 리얼리즘의 방향을 가늠하는 61년도의 작품이라는 점에서 궤를 같이한다. 그러고 보면 60년대 초반은 세계적으로 이상한 시대였다. 세계영화사적으로 볼 때도 걸작들이 가장 많은 시기이다.

  그리고 개인적인 사정상 미리 본 몇 편의 일본 영화들을 마지막으로 이야기해야겠다. 현재 상업성과 실험성을 가장 성공적으로 포개어놓는다고 평가받는 쿠로자와 키요시의 <거대한 환영>은 약물 실험을 자청한 남녀를 통해 ‘환상’이야말로 세기말을 돌파한 유일한 사랑의 방식이라는 이상한 결론을 내놓는다. 그의 결론은 상당히 일본의 상황을 고려한 것인데, 그가 만들어내는 꽃가루가 날리는 화창한 태양의 이미지는 그 자체로 병적이고 세기말적이며, 2005년도라는 연대기적 배경은 디스토피아적인 암울함을 더한다. 그와 반대로 <오사카 스토리>는 오즈 야스지로의 유령을 따라 오사카의 한 가족을 무대로 삼아 가족의 해체를 다룬다. 그러나 고집스럽게도 이치카와 준은 결국 전통적인 것들의 가치를 소중히 다루고 있다. 오즈의 후예답다. 마지막으로 언제나 부산 영화제의 인기를 독차지해 온 사이버 펑크의 감수성을 지닌 츠카모토 신야의 신작 <쌍생아>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다. 촬영, 연출, 각색 등 일인 다역을 해내는 그가 이번에는 독립 제작방식이 아니라 메이저의 지원을 받아 제법 스토리를 갖춘 시대극을 만들었다. 속도감과 분열 의식, 그리고 피어싱(육체에 구멍을 뚫는 행위)은 여전하지만 위의 감독들과 비교해 볼 때 그는 가장 세련되어 있으면서도 정작 일본의 정체성에는 관심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 속도광에게는 속도 자체만이 중시될 뿐이다. 얼마나 빨릴 달릴 수 있을까. 늙으면 정적인 영화를 만들겠다고 하니 언제나 청춘으로 살고 싶은 모양이다.

  아직은 많은 일정이 남아있다. 아마도 그때가 되면 스스로 질문했던 몇 가지 의문에 답을 얻을지도 모르겠다. 과거에 극장에서 보지 못했던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도 스크린 위에서 만나고 싶고, 츠카모토 신야와는 인터뷰도 하게 될 것 같다. 무엇을 물어볼까. 사실 그의 영화는 재미 이외에는 큰 감정이 없는데... 여하튼 부산에서 건강하게 지내는 편이다. 이 편지를 읽을 쯤 아마도 난 또 새로운 영화를 보고 있겠지. 그 나머지 소식은 다음 편에 전하기로 하자.

  꼬마인터뷰 in 부산

▶`감독의 인간관은?

<나날들>의 왕 샤오슈아이 : 20세를 조금 넘은 나이에 철없는 눈으로 세계를 보았을 때, 우리는 더 나은 미래를 가질 수 없을 거라고 믿었다. 그러나 지금은 나의 돈으로 차를 살만큼 변했다.

▶`영화를 만들면서 특별히 좋았던 기억은?

<숨결>의 변영주 : 내 영화가 일본에서 개봉되는 기회를 잡았다. 그 이후로 일본인 관광객들이 ‘나눔의 집’을 방문한다. 이런 작은 변화가 기쁘다.

▶`앞으로 홍콩에는 뭐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가.

<그해 불꽃놀이는 화려했다>의 프루트 챈 : 자유가 필요하다. 정확한 비유는 아니지만 북한 사람들이 남한을 접수한다고 가정해보자. 당신들도 좀 답답해지지 않겠는가. 그런 미묘한 분위기가 홍콩에는 있다.

▶`일본에서 당신 영화의 인기는?

<쌍생아>의 츠카모토 신야 : 일본 역시 할리우드 영화를 더 좋아한다. 내 영화는 외국에서 더 인기있다. 일본에서는 내 영화를 본 관객이 드물다.(그는 관객과의 대화 시간에 한국 관객들을 사진으로 찍었다. 일본에 가서 자랑할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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