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다녀간 ‘하인즈 워드’의 열풍으로 온 나라가 떠들썩할 때, 그로 인해 다른 한 쪽에서 더 바쁘게 뛰고 있는 사람이 있었다. 바로 ‘국제가족한국총연합회’의 배기철 회장이다. 인터뷰를 위해 만난 그는 분명 외국인의 외모를 가지고 있었지만, 첫인사를 건네는 목소리에는 친근한 부산 말투가 섞여있었다.
그는 미국 슈퍼볼 스타인 하인즈 워드의 방한으로 언론이나 정치권에서 혼혈인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상황 때문에 갑자기 자신도 너무나 바빠졌다고 한다. 하지만 이런 갑작스런 외부의 관심에 가장 먼저 당부하고 싶은 것은 자신들을 ‘국제가족’으로 불러달라는 것이었다. ‘국제가족’이란 명칭은 지난 해 7월 7일 단체를 창립하면서 불리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사회의 관심이 적었기 때문에 잘 알려지지 않았던 그 명칭은 현재 높아지고 있는 혼혈인에 대한 관심 속에서 ‘결혼이민자 자녀’, ‘이중문화’, ‘다문화’ 등의 여러 용어들로 대신 불려지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혼혈 1, 2세대들의 대부분은 이 땅에서 자란 이 나라 사람이지 이민자의 자녀가 아니며, 어떤 문화로서가 아닌 이 땅의 계속되고 있는 한 구성원으로서 ‘국제가족’이란 명칭을 불러 주었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이 단체의 구성원들은 대부분 배기철씨와 마찬가지로 국제가족 1, 2세대들로, 6?5전쟁 전후시기에 출생한 사람들이다. 대부분의 잘못된 언론의 보도는 이들의 어머니를 모두 기지촌 여성으로, 그들 자신을 성매매의 결과로 인식시켰다. 하지만 그들의 출생은 6?5라는 전쟁이 만든 비극이었다.
배기철씨의 경우도 그랬다. 시집을 가서 아들과 딸이 있던 그의 어머니는 전쟁 당시 장에 나갔다가 미군에게 원치 않는 수모를 겪었다. 그 결과 그가 태어났고 시집과 친정에서 수치로 여겨졌던 어머니는 그를 데리고 쫓겨나 힘겹게 살아야 했다. 이후 그는 자신의 외모 때문에 사회적인 차별이 심할 것은 뻔하다고 생각했고, 일찍이 서양문화가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호텔에 취직했다. 그는 전국의 여러 도시를 돌아다니며 호텔 일을 배웠다. 그러나 지배인으로 성장하기까지는 다른 지방 출신이라는 넘어야 할 산 이전에, 다르게 생긴 외모라는 또 다른 차별의 꼬리표를 떼어낼 수 있을 만큼의 더 많은 노력이 필요했다. 그는 지금 국제가족 아내를 만나 이 단체의 활동에 전념하며 살아가고 있다.
단체를 운영하면서 목표로 하고 있는 것은 어머니들의 명예회복과 함께 국제가족 1, 2세대들의 권익보호, 생활 빈곤 관련 복지해결이라고 한다. 6?5 이후, 정부는 이들에 대한 제대로 된 정책을 마련하지 못하고 ‘입양’과 같은 방법으로 국가에서 분리시키는 정책만을 시행해왔다. 그러나 이제는 국가가 나서서 그들을 보호해 주고 보상해주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들 1, 2세대의 권익이 보호될 때, 기회의 불평등과 빈곤이 뒷세대에 되물림 되지 않을 것이며 또한 국제결혼을 통한 더 많은 국제가족 자녀들의 위치도 세워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이번 혼혈인 관련법안과 같은 문제해결의 자세가 ‘워드열풍’으로 인한 일시적인 현상이 아닌, 우리나라 안에서 주체적으로 고민하고 일궈낸 것이어야 한다고 말한다.
“세계화 시대, 세계인이라고 하지만 생각과 마음도 그렇게 바뀌어야 한다고 봅니다. 추상적이기까지 한 ‘단일민족’이란 틀에 국민을 묶어두는 교육도 바뀌어야 합니다. 예부터 서로를 도와주고 내 것도 나누어주는 우리 고유의 그 심성은 어디로 갔을까요. 그것이야말로 세계화 시대에 필요한 마음가짐일 겁니다. 국민들이 원래의 그 심성대로 우리를 봐주었으면 합니다”라고 말하는 그의 눈빛은 분명 어느 누구보다도 당당한 한국인이었다.  

안혜숙 편집위원  ahs1182@cauo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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