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규 / 사이언스타임즈 편집위원

한때 인기를 끌었던 일본만화 ‘은하철도 999’는 서기 2100년을 배경으로 한 우주개척시대의 이야기다. 안드로메다로 가는 기차표를 얻은 주인공이 ‘은하철도 999’를 타고 우주여행을 하면서 겪는 모험담이다. 이처럼 빠른 속도로 달리는 은하철도는 우주의 여러 가지 위험한 장애물과 맞닥뜨릴 수 있다. 무서운 속도로 스쳐가는 소행성이 있는가 하면 엄청난 열기를 뿜어내는 초신성의 폭발도 주의해야 한다. 그 중에서도 가장 무시무시한 것은 블랙홀이다. 블랙홀에 한번 빠져들면 어떠한 것도 빠져 나올 수 없다. 심지어 1초에 약 30만km의 속도를 지닌 빛조차 그곳에 들어가면 끝이다. 빛까지 삼켜 버리는 무서운 우주 괴물인 셈이다.
그럼 과연 블랙홀은 실제로 존재할까. 우선 블랙홀이라고 하면 우주 속에 뚫려 있는 검은 터널쯤으로 알기 쉽다. 또 실재한다기보다 상상이나 이론상으로만 존재하는 가상현상쯤으로 여기기도 한다. 하지만 블랙홀은 가상의 검은 터널이 아니라 실제로 존재하는 별이다. 다시 말하면 별이 죽어서 한 점으로 오그라든 별의 시체이다. 영국의 천체물리학자 스티븐 호킹은 블랙홀의 관측에 대해 “지하 석탄창고에서 검은 고양이를 찾는 것과 같다”고 표현했다. 빛조차 삼켜 버리니 블랙홀의 관측은 이처럼 불가능해 보인다. 그러나 방법은 있다.
 
이웃 별의 물질을 빨아들이는 X선

밤하늘에 보이는 별들은 약 50%가 두 별이 서로의 주위를 도는 쌍성이다. 만일 쌍성 중에 한 별이 블랙홀이라면 강한 중력으로 옆에 있는 별의 물질을 빨아들일 것이다. 그 과정에서 높은 에너지를 갖는 X선이 나오게 된다. 1970년 발사된 최초의 X선 관측위성인 우후루는 1년 후 이상한 별을 하나 발견했다. 백조자리에서 X선 별이 관측되었는데, 놀랍게도 1초 동안 1,000번이나 깜박거리고 있었다. 계산 결과 이 보이지 않는 별의 크기는 지름이 300km 이하인데도 질량은 태양의 10배 정도인 것으로 드러났다.
이렇게 작은 별이 까마득하게 먼 곳인 지구에서도 관측이 될 만큼 강한 X선을 내뿜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별의 바로 옆에는 일반 광학 망원경으로도 관측되는 거대한 별이 있었다. 그 큰 별의 운동을 유심히 관측한 결과, 비틀거리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그 이유는 바로 옆에 있는 작은 X선 별 때문이었다. 그 보이지 않는 작은 X선 별은 바로 블랙홀이었다. 이웃한 큰 별의 물질을 빨아들이는 과정에서 생긴 X선으로 블랙홀을 찾을 수 있었던 것이다. 이와 같이 블랙홀로 추정되는 천체는 지금까지 10여 개 이상이 관측되었다.
블랙홀의 탄생은 태양과 같은 별들이 진화의 마지막 단계에서 맞는 죽음의 과정에서 비롯된다. 태양만한 별들은 죽을 때 적색 거성으로 부풀어 올랐다가 백색 왜성으로 남게 된다. 그러나 태양보다 8배 이상의 질량을 가진 큰 별들은 엄청나게 큰 폭발을 일으킨다. 그것이 바로 초신성 폭발이다. 별이 살아 있을 때는 별의 중력과 내부의 핵융합으로 인한 에너지가 균형을 이룬다. 그러다가 내부의 핵에너지를 다 소모하면, 외부로 팽창하는 힘은 없어지고 내부로 수축하는 중력만 남아서 한없이 수축하게 된다. 초신성 폭발 이후 이처럼 엄청난 중력으로 오그라든 것이 중성자별이다.

천차만별인 블랙홀

 태양보다 수십 배 이상의 질량을 가진 큰 별은 초신성 폭발 이후 남아 있는 질량도 큰데 그것이 태양 질량의 3배 이상이면 중성자별의 단계를 초월해 블랙홀이 된다. 중성자별의 질량은 엄지손톱 크기가 10억톤이 넘는데, 블랙홀은 손톱 하나 크기의 질량이 지구 전체 질량과 맞먹을 정도이다. 즉, 지구가 반지름 0.9cm로 줄어든다고 가정하면 블랙홀이 될 수 있다. 그러니 블랙홀은 엄청난 중력으로 빛을 포함한 거의 모든 것을 빨아들일 수 있다.
 이처럼 별의 시체로써 생긴 블랙홀 외에 훨씬 더 큰 규모의 블랙홀도 있다. 바로 대부분의 은하 중심에 존재하는 거대 블랙홀이 그것이다. 우리은하에서 거대 블랙홀의 그림자가 드러난 것은 1974년이다. 우리은하 중심에 있는 ‘궁수자리 A’라는 커다란 전파원 안에서 밀집된 전파원이 하나 발견됐던 것이다. 이후 꾸준한 관측을 통해 우리은하 중심에 태양 질량의 250만배나 되는 어떤 천체가 존재하는 것으로 추정됐다. 2000년에는 찬드라 X선 망원경이 마침내 거기에서 X선을 포착해 우리은하의 거대 블랙홀이라는 사실을 밝혀냈다.
은하 중심의 거대 블랙홀은 너무 커서 별로 만들어지지 않았을 것으로 추정한다. 성단이 합쳐졌거나 블랙홀이 블랙홀을 잡아먹었다는 등의 가설이 있지만 아직 밝혀진 것은 없다. 또 최근에는 원자보다 작은 초미니 블랙홀이 있다는 주장도 나왔다. 우주에서 거의 빛의 속도로 날아오는 입자(우주선)가 지구의 대기권에 존재하는 입자와 충돌하면 아주 작은 블랙홀이 만들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우주의 무서운 블랙홀처럼 이 초미니 블랙홀도 빛조차 빠져나올 수 없을 만큼 밀도가 높다. 다만 이 블랙홀은 크기가 양성자 질량의 1,000배로 현미경으로나 볼 수 있을 만큼 작다. 또한 만들어지자마자 10의 27제곱분의 1초 만에 증발해버리기 때문에 존재한다 해도 관측이 어렵다.
블랙홀에 대해 알면 알수록 ‘은하철도 999’에 나오는 다음의 대사 한 구절이 가슴에 와 닿는다.
“블랙홀이라고 부르는 암흑의 점 속에는 때때로 외로운 사람이 사는 별도 있다고 한다. 추억과 슬픔이 후회와 함께 조그만 덩어리가 되어 죽은 듯이 암흑 속에 몸을 숨기고 있는 그런 별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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