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 필 / 프리랜서 기자

첫사랑 S와 재회하고 사랑을 시작한 곳은 수원역에서였다. 멀건 대낮에도 어둠이 짙게 드리운 수원역은 늘 분주했다. 수도권 전철과 무궁화호, 새마을호가 관통했던 그곳은 기적소리가 울리면 사람들을 기다렸다는 듯 토해냈기 때문이다. 그렇게 수많은 사람들 속에서도 S는 나를 한눈에 다시 알아봤다 했다.
그리고 S와 다시 만난 곳은 대구역이었다. 나를 만나기 위해 주말을 틈타 내려온 S를 나 역시 수많은 귀향 인파 속에서 한눈에 알아봤다. S의 도착을 알리는 설레는 기적소리와 떠남을 알리는 야속한 기적소리를 들으며 우리는 수많은 만남과 이별을 셀 수 없이 반복했다. 지금도 잊을 수 없는 아찔한 첫 키스 역시 기적 소리와 함께였다. 떠남을 재촉하는 기적소리가 너무도 야속해 무궁화호 난간에 매달린 나는 10㎝도 채 되지 않은 플랫폼을 사이에 두고 S와 아릿한 입맞춤을 길게 나눴다. 마치 그 키스로 기차의 출발을 멈출 수 있는 양, 가슴이 뻐근했던 내 첫 키스는 그렇게 기적소리와 함께 사라졌지만 지금도 어제 일처럼 생생하기만 하다. 그렇게 설레는 만남과 가슴 아린 헤어짐은 수원역, 대구역, 부산역 그리고 서울역 등등 기차가 숨을 고르는 어느 역에서든 반복됐다. 그런 반복에 지칠 때쯤 우리는 결국 영등포역에서 헤어졌다. 첫사랑의 절절했던 감정이기에 나는 이별을 쉽게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런 나를 비웃기라도 하듯, 헤어지던 날 영등포에서 들었던 그 기차의 기적소리는 내 귀를 시리도록 아프게 후벼팠다.
그렇게 떠났던 S에 이어 다시 만난 사람 역시 기적소리와 함께였다. 첫사랑에 대한 아픔으로 괴로워하던 그 때, J는 동대구역에서 환하게 웃으며 나를 맞았다. 모든 게 괜찮아질 거라는 그 웃음에, 그렇게 듣기 싫고 아팠던 기적소리가 새삼 따뜻한 휘파람처럼 들려왔다. 그러나 그렇게 해맑았던 J도 나를 떠났다. 서울역이 KTX역사로 새 단장할 무렵, 서울역 대합실에 J를 남겨두고 나는 뒤돌아 섰다. 그러나 출발을 알리는 기적소리가 마치 이별을 알리는 비창 같아 결국 기차표를 버리고 버스를 타고 떠났다.
그렇게 내게 사랑의 설렘과 고통을 동시에 안겨줬던 기차의 기적소리를 다시는 듣지 않으리라 결심했건만, 4년 간의 대학생활 내내 나는 거의 매주 기적소리와 함께 했다. 전국의 수많은 대학영자신문사를 찾아다니며 수없이 들었던 기적소리는 나태한 정신을 일깨웠고 그 기적소리와 함께 했던 수많은 인연은 지금도 내 삶의 소중한 자양분이 되고 있다.
인연이 닿아 연인이 된 사람들은 “인연이 기적 같다”는 말을 자주 한다. 말장난 같겠지만 내 인연은 늘 (기차의) 기적과 함께 한다. 특히 요즘은 그 기적을 매일 경험한다. 출근길, 경의선 통근 전철이 기적소리를 내며 건널목 앞에 정차한 내 앞을 덜컹이며 지나는 순간, 연인인 P가 기다렸다는 듯 다정한 아침 인사 전화를 걸어온다. 기적소리는 이렇게 내 삶을 관통하는 소중한 인연을 만나게 하는 또 다른 영혼의 동반자인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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