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원 / 연세대 생화학과 박사후 연구원

사전적으로 중독이란 독물이 체내에서 작용하여 기능장애를 일으키는 경우를 일컫는 말이지만 우리는 일상에서 보통 좁은 의미로 특정 약물이나 대상, 행위에 대해서 충동적, 습관적으로 사용하게 되고 중단할 경우 금단현상을 겪게 되는 경우에 한정해서 사용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우리의 일상에는 다양한 중독들이 등장한다. 니코틴과 같은 약물중독이나 인터넷중독, 쇼핑중독과 같은 행위과 관련된 중독도 있다. 중독상태를 규정하는 지표로는 의존, 남용, 충동적 행위·사용, 금단현상 등이 있다.

중독의 생물학적 기반

중독에 있어서 가장 무서운 점은 특정 수준을 넘어가면 자신의 의지로 중독현상을 통제할 수가 없어진다는 점이다. 알콜중독자들은 술을 마시면 죽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술을 마시게 된다. 우리들의 의지를 뛰어넘는 이 현상에 대해서 약리학자들과 신경생리학자들은 ‘약물중독은 뇌에 되돌릴 수 없는 물리적 변화가 생기기 때문에 일어난다’고 설명한다.  뇌의 기능이란 기본적으로 뉴런간의 신호전달이고 이의 매개는 시냅스라 불리는 세포간의 접점과(물리적 구조) 그 접점에 분포하는 수용체, 그리고 그 수용체에 들러붙는 신경전달물질(분자적 구조)들이다. 신경신호는 하나의 세포내에서는 전기적인 신호로 전달되지만 이 신경과 신경의 접점인 시냅스에서는 간격이 있어 전기가 흐를 수 없으므로 전기신호가 축색돌기 말단에 이르면 신경전달물질이라 불리는 화학물질을 방출한다. 신경전달물질은 시냅스 건너 확산이 되고 건너편의 세포의 수상돌기에 있는 수용체에 결합, 신호를 전달한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시냅스로 방출된 신경전달물질은 원래 세포로 회수되거나 분해효소에 의해 분해가 된다. 우리가 흔히 마약이라고 불리는 중독성 환각물질, 혹은 향정신성의약품들은 이러한 신경전달물질과 관련된 일련의 과정을 방해하게 된다. 이들 물질은 신경전달물질을 흉내내거나(LSD, 몰핀, 헤로인), 재흡수나 분해를 방해하여 그 효과를 지속시키거나(니코틴, 코카인, 암페타민), 방출을 촉진(암페타민)시켜 정상적인 뇌의 활동을 왜곡시키고 그 결과 환각이나 강력한 각성효과, 진통효과 등을 가져온다. 문제는 뇌의 여러 활동들은 분자수준에서의 일련의 자극-반응-복구라는 싸이클의 균형을 섬세하게 조정해 놓은 고도의 민감한 상태인데 강력한 약물의 사용은 이러한 균형을 깨뜨린다는 점이다. 한도를 넘은 약물의 지속적인 사용은 뇌가 스스로 이 균형을 찾지 못할 정도로 시스템을 망가뜨리고 비정상적인 상황에 적응하여 재조직되어버린 뇌는 약물의 반복적, 강박적 사용과 금단현상이라는 중독의 폐해가 나타나게 한다.

중독은 약의 문제인가, 사회적 문제인가

약리학자들과 신경생리학자들은 중독이란 그 물질이 가진 속성이고 마약에 접촉한 사람은 필연적으로 중독에 빠지게 되므로 이러한 접촉을 차단하는 것이 최선의 예방책이라고 얘기한다. 그러나 소수이지만 중독을 심리적 문제로 간주하고 이의 해소를 위해서는 사회적인 노력이 필요하다는 견해도 있다. 캐나다의 임상심리학자인 브루스 알렉산더는 약물중독이란 사회적 현상이라는 주장을 펼쳤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약물의 반복적 충동적 사용이라는 중독의 특징은 개인이 느끼는 스트레스와 고통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과정에서 생긴 일이지 약물자체가 강요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는 그 증거로 진통 목적으로 몰핀을 처방받은 사람들이 중독되지는 않으며 베트남 전쟁에서 헤로인에 중독된 군인 중 90%가 귀향 후 손쉽게 약을 끊었다는 점을 들었다. 그리고  ‘쥐공원(rat park)’ 실험을 통해서 이를 실험실에서 재현해 냈다. 쥐공원 실험에서 마약에 중독된 쥐들은 먹이 걱정 없이 마음껏 뛰놀고 쉬고 새끼를 칠 수 있는 쥐공원에 살게 되자 더 이상 마약을 찾지 않게 되었다. 반대로 여전히 비좁은 우리에 갇힌 쥐들은 자기의 몸이 상할 때 까지 마약을 탐닉했다. 그는 이 결과를 바탕으로 마약퇴치에 사용되는 예산의 일부를 마약의 위험에 노출된 사회취약계층의 처우 개선에 사용할 것을 주장했다. 이 견해는 특히 일중독, 인터넷중독, 쇼핑중독, 게임중독과 같은 강박적인 행위중독에 빠진 사람들을 생각해 볼 때 더욱 타당성 있게 느껴진다. 위와 같은 행위중독에 빠지는 사람들은 불안감과 소외감에서부터 도피하거나 잊기 위해 특정행위에 강박적으로 집착하게 된다.
중독에 관한 위의 두 가지 견해는 그 어느 것도 확실하게 입증 되지 않은 상태이다. 절충해 보면 어느 한도 이후로 중독은 개인의 의지로서는 거스를 수 없는 생물학적, 물리적 현상이지만 그 이전은 개인의 심리적인 문제라고 생각해 볼 수 있다. 하지만 어떤 견해이건 간에 무한경쟁 시대의 중압감에 눌리는 우리 현대인들이 중독에 빠지기 쉽다는 것만은 사실이다. 그 시작은 호미로 막을 수 있는 작은 구멍이겠지만 그 종국은 가래로도 막을 수 없는 커다란 구멍이 된다. 그리고 그 구멍으로 새어나오는 것은 바로 우리들의 영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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