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들섬 예술센터 건립사업이 시작부터 비민주적 행정, 졸속적인 추진과정으로 무리를 빚고 있다. 5,000억원 이상의 시민의 혈세가 투입될 사업임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된 의견수렴 절차조차 없이 진행되고 있다. 문화예술 진흥정책이 부재한 채 추진되는 건립사업은 또 하나의 전시행정이 될 뿐이다. 이번 사례를 통해 우리의 문화환경은 어떠한지 그리고 시민들에게 정말 필요한 문화정책은 무엇인지 생각해 보고자 한다.  <편집자주>


완군 / 문화연대 활동가

이명박 시장이 노들섬 오페라하우스의 삽을 뜰 수 있을까. 전망이 그리 밝아 보이지는 않는다. 전혀 실현 불가능한 프로젝트인 오페라하우스의 건설을 밀어 붙이는 유일한 동력은 이명박 시장의 야심이었다. 따라서 오페라하우스는 그가 민선 3기를 넘어 4기에도 여전히 서울 시장실에 머물러야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이명박 시장이 야심의 실현을 위해 욕망을 접을 것 같아 보이지는 않는다.
지난 27일 이명박 시장은 ‘비전 2015, 문화도시 서울’로 명명된 거대 계획을 발표했다. 임기 막바지에 장렬하게 개발의 불꽃을 피워 올리고 있다. 이에 앞서 불과 며칠 전인 21일에도 ‘강북지역 업그레이드 개발전략’으로 불리는 ‘유턴 프로젝트’를 발표한바 있다. ‘비전 2015, 문화도시 서울’ 프로젝트는 2015년까지 총 7조 6천억원을 투입하여 문화와 예술이 숨쉬는 인간 중심 도시로 서울을 ‘건설’하겠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세부 내용을 조금만 더 살펴보면 미술관, 박물관, 도서관의 대폭 증설, 축제 육성 조례 제정, e-스포츠 전용경기장 건설, 노들섬 오페라하우스 건립 등을 통해 세계적인 문화 컨벤션 도시로 서울을 육성하겠다는 야무진 포부를 밝히고 있다. 그러나 섣부른 환호작약은 금물이다. 세계적 혹은 일류라는 방향과 문화는 정면으로 충돌하는 것이다. 세계일류문화도시란 말은 형형모순의 말장난일 뿐이다.

문화없는 스펙터클의 정치

이명박 시장은 건설회사 사장 출신으로 불세출의 추진력을 대중적 매력으로 어필하며 시장실에 들어섰다. 그는 ‘시청 앞 광장’, ‘청계천 개발’ 등 그가 아니면 도저히 불가능했을 프로젝트들을 연달아 세상에 선보이며 누구도 본 적 없었던 ‘스펙타클’들을 만들어 왔다. 말하자면 개발 전문가로서의 그의 행정은 도시의 모든 것을 볼거리로 만들어 시각에 봉사하는 행정이었다.
이명박 시장의 머릿속에 랜드마크와 한강이 오버랩되며 오페라하우스라는 단 하나의 완결적이고 실체적인 이미지를 형성한 순간부터 모든 논리적 비판은 무용했다. 그러나 노들섬에 오페라하우스를 짓는 일은 치명적으로 불가해한 일이다.
우선, 오페라하우스 규모의 시설을 지으려면 최소 1만 8천평이 필요하지만 노들섬의 건축 가능 면적이 1만 5천평 밖에 되지 않는다. 이미 알련진대로 1만 5천평 중에서 절대 개발해서는 안되는 생태 습지가 포함되어 있다. 기회가 있을때마다 ‘생태’를 외쳐왔던 이명박 시장이 오페라하우스를 지으며 얼마 남지 않은 생태 습지를 파괴하려 하고 있다. 오페라하우스는 그가 획득했던 사회적 이미지가 철저한 허구였음을 증명한다. 둘째, 서울에 오페라하우스와 같은 대규모 예산이 투영되는 문화시설은 필요치 않다. 서울에는 서울시에서 직접 관리하는 13개소의 문화예술회관과 53개소의 종합공연시설 그리고 세종문화회관과 국립극장 등이 밀집되어 있다. 지금 필요한 것은 오페라하우스 건립이 아니라 서울시가 운영하고 있는 문화예술회관이 13개소에 대한 활성화 방안이다. 총 53개소에 이르는 서울 시내 종합공연시설의 이용율 실태에 대한 객관적 분석에 기반한 다양하고 값싼 프로그램의 운영이다. 3,900석 규모로 아시아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세종문화회관은 이명박 시장 취임 이후 계속 표류중이다. 세종문화회관은 연간 2백억 이상의 시비가 투입됨에도 불구하고 재정자립도는 10%대에 머물며, 시민들의 만족도 또한 높지 않았다. 또한 그렇다고 해서 예술단체들의 공연성과가 한국 공연예술계를 선도하는 것도 아니다. 한 마디로 서울시가 안고있는 종합적인 골칫거리이다. 시내 중심에 입지한 세종문화회관은 예닐곱에 이르는 전속 예술단을 가지고도 제대로 운영이 되지 않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오페라하우스가 더해질 경우 상황은 재앙이 될 것이다. 
이 밖에도 노들섬에 대한 환경  파괴 문제가 제기되고 소수자의 접근성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가 드러났지만, 그런 사소한 문제까지 따지면서 어느 세월에 짓느냐는 한 마디에 박살났다. 오페라하우스를 건설하는 것 이외에 모든 논리와 입장은 사소한 기술적 문제가 되어버렸다. 오페라하우스는 반드시 지어져야 한다. 서울시에서 얼마 전에 영입한 서울시향 지휘자 정명훈의 인터뷰를 보면 오페라하우스의 존재이유는 보다 분명해진다.

시향을 맡게 된 이유 중 하나가 전용 콘서트홀을 지어주겠다는 약속 때문이었다. 노들섬에 지어질 콘서트홀이 3년 반 안에 완공될 것이라 하는데, 그 때까진 어느 정도 수준으로 실력을 향상시켜야 한다.
- 연합뉴스, <서울시향 리허설 현장에서 만난 정명훈>, 2005. 9. 26.

권력화된 공간의 부조리

비판자를 비난하고 반대자를 배제하는 이명박 특유의 방식은 오페라하우스에서도 환하게 빛나고 있다. 청계천 광장에 놓을 상징 조형물로 올덴버그의 ‘스프림’을 선정한 것에 보듯이 세계적 ‘명품’과 ‘상짱에 대한 그의 열망과 집착은 거의 병적이다. 공적인 공간에 있는 사람 중에서 가장 말이 안통하는 사람이 바로 이명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확신에 차있으며 전혀 흔들림이 없어 보인다. 개발에 대한 신념과 이를 뒷받침하는 행보에도 거침이 없다. 도시를 지배하는 것은 정녕 개발의 스펙타클일까. 시민들은 지금 개발 전문가 이명박의 처방에 환호하고 있다. 정치의 미학화를 ‘파시즘’이라 부른다면, 그가 추구하는 개발의 미학화는 뭐라고 불러야 할까.
건축가 정기용은 이 모든 과정을 도시 공간에 대한 ‘총체적 패착’의 결과라고 분석했다. 화폐 가치의 극대화만을 노리는 개발 투기꾼들에 의한 천민적 도시 지배속에서 풍요로운 도시의 삶은 넓은 평수의 아파트에 들어가는 것이라는 끊임없는 속삭임은 진부하지만 강력한 훈육이다. 이명박 시장은 식상한 개발의 레파토리에서 환하게 빛난다. 민중의 필요에 따라 쓰임새가 결정되던 보자기 광장이었던 ‘시청 앞 광장’은 이제 잔디를 보호해야하는 세련된 시민은 들어갈 수 없는 성역이 되었지만 시민의 반응은 호의적이다. 도시의 마천루 사이에서 도시 이전의 삶에 대한 기억을 제공하던 청계천이 거대한 ‘시멘트 연못’으로 바뀌었지만, 만족도는 90%를 상회한다.
실로 부조리한 지평이지만 결코 굴복해선 안된다. 우리는 이미 개발주의가 어떠한 상처를 남기는지 잘 알고 있다. 압축적 근대화와 독재개발주의 유산에서 아직도 우리 사회는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명박은 오늘의 박정희이다. ‘잘 살아보자’는 새마을운동의 망령은 이명박에 이르러 ‘뉴타운에서 살자’며 부활했다. 누구나 가끔은 오페라나 즐기며 다른 모든 것들을 압도하는 어떤 풍경에 빠져보고 싶어진다. 그러나 도시의 삶은 그렇게 만만한 것이 아니다. 청계천 개발을 위해 2천5백명의 노점상이 생존의 공간에서 내쫓겼다. 이명박 시장은 지금 잘하면 당신도 ‘프리 마돈나’가 되어 ‘풍경’을 즐겨볼 수 있다며 사회적 배제를 강권하고 있다. 민중의 삶을 그저 풍경으로 전락시키는 그의 시각 행정에 그 넌덜머리쳐지는 개발과 파괴에 비명을 질러야 한다. 단호히 거부해야 한다.
미셀 푸코가 죽기 직전 가진 인터뷰(Rabinow, 1984)를 소개하며 마칠까 한다. 푸코는 권력을 분석하는 공간이 핵심적인 것이었냐는 질문에 “공간은 모든 형태의 공동체적 삶에서 근본적인 것이며, 공간은 모든 권력의 행사에 가장 근본적인 것”이라고 대답하였다. 이명박의 권력은 공간의 변주를 통해 공동체의 삶을 파괴하는 것이었다. 이명박이 아닌 헤테로토피아에 대한 꿈꾸기를 당장 시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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