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회는 대의명분이라는 이름으로 개인에게 많은 것을 요구하고 그 요구를 정당화한다. 이 대의명분이라는 것은 한국사회의 주류라고 불리우는 다수가 공유하고 있는 관념 즉 이데올로기로부터 연원한다. 그 속을 파헤쳐보면 누구도 동의할 수 없는-근거 없는 신화가 자리 잡고 있다. 본 면에서는 한국 사회의 신화를 파헤쳐 볼 것이다. < 편집자주>
글싣는 순서 -  ① 도덕 교과서       ② 군대       ③ 국익
 

 

똥떡, 일그러진 교과서의 기억

 변중용 / 교육공동체 나다 교사

우리는 쉽게 잊어버린다. 중·고등학교 시절, 두발을 제한하고 교복을 입히고 0교시에 야자까지 강제했던 신체의 구속, 하고 싶은 공부가 아니라 이미 정해져 있는 과목을 억지로 배워야 하는 정신의 구속, 우리를 괴롭혔던 이 모든 구속들을 대학에 들어오며 잊어버리고 산다. 다시는 떠올리고 싶지 않아서인지, 대학의 상대적 자유가 만족스러워서인지, 구속의 기억은 벗어나자마자 흐릿한 것이 되어버린다.
그러나 인간의 의식은 기억에 절대적으로 의존하며 무의식을 통해서도 기억은 그 위력을 발휘한다. 아무런 반성 없이 그 기억을 묻어두고 산다면 기억의 힘은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 우리를 기억이 재구성한 세계 속으로 이끌어 간다. ‘매트릭스’의 은유는 결코 미래의 것이 아니다. 그것은 이데올로기에 대한 이야기다.
02년 어떤 역사적인 집회에서도 개방되지 않았던 서울 시내 한복판 광화문이라는 거리를 기꺼이 붉은 악마들에게 허락한 정부의 의도를 읽어내기란 어렵지 않을 것이다. 06년 들어 또 다시 불 타 오르는 월드컵 응원의 열기는 공동체적 축제에 대한 갈망이라는 긍정성만큼이나 자발적인 파시즘의 의혹을 안고 있다. 태극기 패션과 통신회사 마크가 찍힌 유니폼이 어우러져 있는 모습은 자본주의와 국가주의가 합일된 장관을 만들어냈다. 무엇이 한국 사회에서 이런 풍경을 가능하게 했을까.
기억을 더듬어보자. 우리가 경험했던 것들, 우리가 배웠던 모든 것들을 돌아보자. 물론 한국 사회에서의 삶 모든 부분이 우리에게 권위주의를 체득시키고 전체를 위한 부분이 되기를 강요했던 기억으로 가득하다. 이렇게 따지고 보면 자질구레한 일상까지 문제 삼아야겠지만, 그 중에서도 국가주의를 노골적으로 정당화하는 필수 교과목이 있다는 것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노예 교육의 신화
김상봉 교수는 최근에 출판된 <도덕교육과 파시즘>이라는 책을 통해, 도덕교육을 ‘노예교육’이라고 규정하고 “한국 사회의 참된 진보를 위해서는 우리의 정신을 부패시키는 노예적인 도덕교육을 비판하고 해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특히 도덕교과서가 국가주의를 강권하는 것을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애국·애족을 “어머니 품에 안겨서 느꼈던 포근함이나 안도감”에 비유하며 그 자연스러움과 모호함에 기대어 국가주의를 정당화하고, “개인이나 집단의 이익에 앞서 나라와 겨레를 먼저 생각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나라와 겨레를 위해 개인이나 집단의 희생까지도 감수”해야 한다는 전체주의적인 주장을 도덕교과서는 서슴없이 하고 있다. (<중학교 도덕2> 223쪽) 국가의 의무에 대한 논의는 생략하다시피 하고 끊임없이 개인의 책임만을 강조한다. 그는 도덕 교과서가 기대고 있는 이데올로기를 가족주의와 자민족 중심주의로 설명하며, 결국 “언제라도 민족과 국가를 위해 희생할 준비가 되어 있는 전체주의적 인간으로 키우려한다”고 주장한다.
개인의 양심을 국가가 한 가지 정답으로 강제하는 이 웃지 못할 희극의 심각성을 김상봉 교수만 알고 있었던 것은 물론 아니다. 그가 도덕 교과서의 심각성을 깨달았던 계기는 도덕 교사들과의 만남을 통해서였다. 그리고 교사들이 목소리를 내기 전부터 학생들은 교과서의 제목을 ‘도덕’에서 ‘똥떡’으로 바꾸고 있었다. 학생들은 도덕 교과서의 내용을 신뢰하지 않는다. 학생들은 심지어 ‘똥떡’을 비웃으며 그저 성적을 위해 암기할 뿐이다. 그렇다면 문제가 그리 심각하지 않을 수도 있다. 도덕 교과서가 무시당하고 있다면 도덕 교과서의 이데올로기가 강력한 힘을 내는 것은 불가능하지 않을까.
그러나 정말 무서운 것은 학생들이 ‘똥떡’을 무시하는 순간 그 문제에 무관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암기된 국가주의가 막연한 애국심으로 의식을 지배하는 현실은 우리 사회가 결코 ‘똥떡’ 불감증이 아님을 보여준다. 문제를 직시하고 반성하지 않는 태도가 반복되면서 도덕 교과서는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라고 여겨지게 되는 것이다. 어쩌면 그것이 수치스런 도덕 교과서를 지금까지 남아있게 만든 진짜 원인일 것이다.
김상봉 교수는 책 말미에 “국가가 더 이상 도덕 교과서 집필권을 행사하지 않을 때, 그리하여 모두가 모든 방식으로 도덕 교과서를 쓸 수 있을 때” 참된 도덕 교육으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도덕 교과서 폐지의 주장을 구체적으로 표현하기 시작한 것이 현장의 교사들이었지만, 도덕 교과서 폐지의 발목을 잡은 것도 현장의 교사들이었다. 그러나 밥그릇 때문에 양심을 파는 교사들이 더 이상 정당성을 가지기 힘든 이상, 김상봉 교수의 말처럼 국가는 더이상 도덕 교과서를 만들어 내지 않을 가능성은 크다. 7차 교육과정에서도 폐지가 논의되었고, 줄어든 수업 일수 때문에 사라지게 될 가능성이 가장 큰 교과로 도덕이 꼽히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그저 책 한 권과 현장에서의 시시비비 정도로 도덕 교과서가 현실에서 사라지게 되는 것이 더 암울한 일인 지도 모른다. 수치스러운 교과서 하나도 대중의 힘이 아니라 국가가 나서서 먼저 사라지게 만들어주는 현실이 도덕 교과서보다 더 부끄러운 일은 아닐까. 무식한 교과서 하나가 사라지고 더욱 교활한 방식으로 다른 교과들과 교육 현장에 국가주의가 스며든다면, 도덕 교과서 폐지보다 훨씬 힘든 싸움이 올바른 교육을 꿈꾸는 사람들을 기다리고 있을 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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