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주의, ‘거리의 정캄로 이미지화되다


오창은 / 서울문화이론연구소 연구원

작년 9월 한국을 방문한 장 보드리야르(Jean Baudrillard)는 현대사회의 특징으로 ‘이미지의 폭력성’을 지적했다. 미디어가 생산하는 이미지들이 대중에게 폭력적 효과를 산출한다는 것이다. 이미지는 가시적이기 때문에 바이러스처럼 전염된다. 그래서 연쇄반응을 일으키고, 고정관념을 생성하게 된다. 투명한 듯 보이는 이미지들은 사건(시뮬라크르)을 통해 찰나적으로 생성되고 소멸된다. 대신 잔상을 남기며 의미화되어 지속된다. 이미지를 생성하고 의미화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 정보제공자로서 자처하는 미디어다. 흔히 올 상반기 한국사회의 쟁점으로 ‘보수주의의 대반격’을 이야기한다. 장 보드리야르 식으로 말하면 이미지의 폭력성이 ‘보수주의’를 중심으로 뭉쳐져 있다고 할 수 있다.

광장으로 진출한 한국 보수주의 세력들

한국 보수주의 세력이 시청앞 광장에 직접 진출한 사건은 지난 1월 11일 발생했다. 작년 월드컵 열풍과 촛불시위의 현장이었던 시청 앞 광장이 ‘주한미군 철수 반대’와 ‘반미운동 자제’를 주장하는 개신교인들의 대규모 집회현장이 된 것이다.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은 1월 19일에도 제2차 집회를 개최했다. 게다가 지난 3·1절 집회와 4·19혁명 43주년 기념식도 보수진영과 진보진영이 따로 집회를 개최했다. 이를 조·중·동으로 대표되는 보수언론은 적극적으로 사건화하기 시작했다.

사건화 양상은 ‘부상하는 진보, 반발하는 보수’라는 말에 집약돼 있다. 보수진영은 작년 12월 대선 패배 이후 의기소침해 있었다. 그러나 북핵위기의 고조와 미국 부시 정권의 강경노선에 고무되어 정치적 목소리를 한 옥타브 치켜 올렸다. 정치적 영향력을 상실한 채 개혁의 대상으로 전락한 <조선·중앙·동아일보> 등 보수 언론이 이들 군중집회를 정치적으로 이미지화하기 시작한 것이다.

보수진영이 진보세력에 반발해 광장의 정치에 직접 뛰어든 것은 46년 3·1절 집회 이후 남한에서는 반세기만의 일이었다. 그런데 올해 다시 거리의 정치 현장에서 ‘진보/보수’가 공공연하게 부딪치고 있는 상황이다. 이렇듯 ‘거리의 정캄에 한국 보수세력이 직접 뛰어든 것은 이들이 딜레마적 상황에 처해 있음을 반증한다.

젊은 세대를 보수주의로 호명하다

한국 보수세력의 딜레마적 상황이란, 보수세력의 ‘박탈감’과 ‘기득권 수호 의지’의 충돌을 말한다. 당연한 것으로 여겨졌던 것이 의심받을 때, 인간은 혼란을 경험한다. 한국 보수세력은 ‘냉전적 반공주의’, ‘성장 제일주의’, ‘가부장적 권위주의’를 당연한 것으로 여겨왔다. 이러한 신념체계가 근간에서부터 위협받게 되자 한국 보수주의가 맨살로 ‘광장’에 뛰어들고 있는 것이다. 한국 보수세력의 행동주의는 지난 겨울 대선에서의 패배로 인한 충격의 발현이고, 북핵 위기로 인한 친미 사대주의 표출이며, 젊은 세대를 자신의 영향권내로 끌어들이기 위한 몸부림이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부분은 한국 보수세력의 행동 양상이다. 이전에는 <한국논단> ‘자유기업원’ 등이 보수세력을 대변해 왔다. 그러나 최근에는 인터넷 공간에서 보수주의가 확산되는 것으로 이미지화되고 있다. 인터넷의 대표적 보수 매체인 <독립신문>의 활동은 심심찮게 <조선·중앙·동아일보>의 지면을 장식했다. 대학가의 보수·우익단체인 ‘미래한국연구회’가 집중조명을 받고, 보수를 표방하는 인터넷 커뮤니티 ‘청년우파연대’가 보수언론의 단골 기사거리로 취급되고 있다.

이제까지 한국 보수주의는 젊은 세대들의 정치적 무관심을 조장해 왔다. 그런데 최근에는 젊은 세대들을 보수주의의 핵심적 전위병들로 이미지화하고 있다. ‘젊은 세대를 포섭하라’가 최근 한국 보수세력의 핵심적 행동 양상이라고 할 수 있다. 이를 통해 한국 보수주의의 이념을 유포하고, 담론 진영내에서 ‘보수주의 이념’이 적극적으로 이야기 될 수 있는 발판을 만들고 있는 것이다. 보수주의의 대반격은 젊은 세대내에서의 ‘진보/보수의 갈등’을 적극적으로 이미지화하면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것이다.

젊은 세대 내 ‘진보/보수’ 갈등 조장

현실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실재하지만, 사건화되지 않으면 대중에게는 가시적으로 나타나지 않는다. 미디어가 대중들에게 투시시켰을 때 사건화되고 의미화되는 것이다. 한국 보수주의의 준동은 실재하는 현실이기는 하면서, 보수언론에 의해 이미지화된 사건이기도 하다. 사건화를 통해 이들 보수언론들은 젊은 세대들을 끊임없이 이데올로기적으로 ‘호명’하고 있다.

사실, 인간은 ‘진보/보수’와 같은 이분법적 체계로 쉽게 호명되지 않으며, 단일한 행동양식만을 고집하지도 않는다. 정치적 진보주의자가 문화적 보수주의자일 수 있으며, 사회적 보수의자가 문화적 진보주의를 표방할 수도 있다. 단지, 특정 국면 속에서 이데올로기적으로 호명되었을 때, 주체적이면서도 실천적으로 행동의 방향을 선택할 수 있는가가 항상 문제였다. 따라서, 한국사회의 보수주의와 관련된 일련의 사건들은 특정 국면에서 보수언론에 의해 조작되고 있다는데 위험성이 내재해 있다. 더불어, 보수주의가 ‘거리의 정캄로 이미지화되어 젊은 세대들에게 강요되고 있으므로 폭력적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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