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6호 [나의 보물창고]

 

'명수대 문방구’

정지혜 편집위원
silentio@empal.com

영악한 요즘 아이들이 갈 성싶지 않은 다 쓰러져 가는 문방구가 있다. 몇 년 전부터 드나들기 시작한 그 문방구는 흑석초등학교 담장에 붙박여 좀처럼 새단장을 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그것이 내게는 다행스럽다. 가끔 나는 어느 동네라도 불쑥, 허름해 보이는 문방구에 들르곤 한다. 문구를 사기 위해서는 물론 아니다. 줄줄이 매달려있는 불량식품과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는 빛 바랜 ‘준비물’들. 그들이 내게 해 주는 말을 듣기 위해서다.

물체주머니를 기억한다. 거기, 그득히 들어있던 여러 묶음 색색의 대롱, 나무토막, 구슬, 자석, 그리고 도통 쓰임을 알 수 없는 작은 사물들. 초등학생이라면 누구나의 준비물이었던 물체주머니의 크기는 실은 어마어마하다. 그 작은 주머니 안에는 세상이 들어있다. 물체주머니를 여는 순간 감각적 경험과 체험의 다발들이 처음으로 정교하게 줄지어 나온다. 그것은 ‘경이’였다.

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나를 즐겁게 하는 것들 중엔 만화경과 비누방울 놀이가 있다. 세 장의 거울에 색종이들이 몇 번이고 되비쳐 만들어내는 만화경 속의 빛깔과 모양의 군무는 아마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거짓말이 아닐까. 그리고, 비누방울이 바람에 날리다 결국 터져버리고 마는 것을 못내 서운한 심정으로 지켜보았던 순간들. 이 모두가 언젠가 한번쯤 우리에게 허락됐던 어이없을 정도로 소박한 경이의 순간이다. 이들은 지금의 우리에겐 더 이상 경이가 아니라 ‘원리’인 것들이기도 하다.

문방구에서 아주 오래 전의 사물들과 나누는 대화는 그래서 단순한 추억이 아니라 깨우침이다. 이처럼 나를 가르친 것은 아주 작은 경이감들이었기에. 그때엔 간혹 글자와 의미의 나열처럼 느껴지던 책꽂이의 책들이 다시금 경이의 텍스트로 읽힌다. 심지어 타인과 사물들, 그들과 맺는 일상의 관계도 경이의 내용들이 아니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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