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5호 [나의 보물창고]

장승배기 ‘문화서젼

윤석정 / 문예창작학과 석사과정
 

푸른 이파리가 길을 덮는 5월, 며칠동안 비가 내리더니 햇빛은 더욱 찬란했다. 공휴일 나들이를 나가는 사람들 틈에서 난 7호선 장승배기 역에 도착했다. 4번 출구로 나와 뒤쪽으로 조금만 올라가니 길가에 책이 쌓여있는 문화 서점(02-823-5204)에 닿게 됐다. 낡고 헤진 책 사이를 지나 허름한 문을 열었더니 두 평 남짓한 서점 안에는 장승처럼 주인아저씨가 서 있는 모습이 보였다.

문화 서점과 나와의 인연은 학기가 시작되면서였다. 헌책방에 간다던 선배들을 무턱대고 따라갔던 그 헌책방은 내 키보다 훨씬 큰 책들을 보여주었다. 그곳은 오래된 교과서부터 문학, 과학, 전문서적, 심지어는 고서들까지 뒤섞여서 책방을 고풍스럽게 만들고 있었다.

난 예전부터 사고 싶었던 책들을 찾을 수 있었는데 이것저것 욕심을 내어 여러 권을 사고도 책 가격이 부담스럽지도 않았다. 더구나 절판된 책도 찾을 수 있으니 이보다 좋은 일이 있을까.그 후 니체를 읽으며 두 권으로 된 70년대 일본어 중역본 박영사 문고판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구입하려고 했던 적이 있었다. 그런데 이 두 권짜리가 헌책방에서 돌아다닌다는 소문을 들었지만 소문 따라 이곳저곳 헌책방을 돌아다녀도 박영사판은 좀처럼 찾을 수 없었다.

그러다가 운명의 만남은 등잔 밑에 있던 ‘문화서젼에서 이루어지게 됐다. 문득 지나쳤던 구석진 자리 책들 틈에 눌려있던 박영사판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먼지 묻은 두 권의 책이 각각 찾기 힘든 위치에 따로 눕혀있었는데, 어둠 속에서 보물 찾듯 조심스레 건져낸 것이다. 이 두 권의 책은 나에게 오기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의 손과 약 30년의 시간을 거쳤던 것일까.

정가 4백 원짜리 판권이 찍힌 두 권 책과의 만남은 돈으로 환산되지 않는 기쁨이었다. 오늘도 난 대방장승이 있는 장승배기로 책 나들이를 간다. 내겐 너무나도 고마웠던 문화 서점. 학교에서 당신에게 이르는 길은 그리 멀지 않다. 장승배기 사거리에 가면 거기에 당신이 서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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