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0호 [젊은 예술가의 초상] 무지개를 넘어서
두 갈래의 길, 충무로와 흑석동을 교차하며
무지개를 넘어서-안진우(중앙대 영화제작 석사1차)  


 

이상용 / 편집위원



영화 <퇴마록>은 서울에서만 40만 이상의 관객을 동원하며 화제가 되었다. 그는 퇴마록의 조감독이었다. 물론 아쉬움이 남는다. 평자들이 지적한 드라마 구조의 취약함에 공감한다. 하지만 영화는 산업적인 것이기도 하다. <퇴마록>의 성공은 한국형 블록버스터의 가능성을 타진해 주었다. 그 여파를 타고 <쉬리>가 궤도에 올랐다. 그것은 한마디로 통쾌했다. 경제적 위기 이후 영화 자본이 위축된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스크린 쿼터제의 문제를 비롯해 말들이 많은 지금 <쉬리>는 다시 영화로 기대를 끌어 모았다.

<퇴마록>을 하면서 얻은 것이 있다면 우리의 CG 기술력을 확인한 것이다. 가능한 것과 가능하지 않은 것을 구별할 수 있었다. CG 기술은 의외로 뛰어나다. 웬만한 것은 다 표현할 수 있을 정도다. 문제는 밑바탕이 되는 미니어쳐, 특수 효과, 특수 분장 등의 능력이 떨어진다. 그래서 CG화면을 만들어도 효과가 살지 않는다. 가령 특수 분장이 밑바탕 되어야 얼굴 모양을 합성하거나 변조가 용이하다. 기본이 되질 않으니 CG 기술을 함부로 입힐 수도 없다.

그런데 충무로에서 일을 한지도 벌써 5년째이고, 현재 데뷔작을 준비중인데 왜 대학원 신입생이 되었을까. 공부하는 예술가가 나쁘지는 않지만 작품을 하는 시간에는 오히려 방해가 될 텐데…. 한동안 그는 영화계에 루머처럼 떠도는 ‘영화병’을 앓았다. 작품을 하지 않는 공백기간 동안 생기는 일종의 우울증 같은 것이다. 사람들은 그것을 영화를 하고 싶어 생기는 병이라고 자위 하지만 자신이 보기에는 소속감이 없어진 탓이다. 계약관계이므로, 계약이 끝나면 속할 곳도 없다. 또 하나는 최근 영화과 대학원 내에 제작팀이 꾸려진 탓이다. 여지껏 이론 전공에만 치우쳤던 대학원 학제가 독자적인 ‘제작팀’이 가능한 제원들을 모았다. 그들 중 상당수는 이미 충무로에서 발군의 실력을 발휘하는 사람들이다. 편집을 하는 박곡지씨, <편지>의 이정국 감독을 비롯해 이제는 결속력과 고민을 같이 할 수 있는 사람들이 대학원에 모여있다. 반가운 일이다.

최근에 본 영화 중 인상 깊은 작품이 브라질에서 건너 온 <중앙역>인 것도 이와 비슷한 연유다. 무척 슬펐다. 무언가 동질감을 느꼈다. 그것은 사람으로부터 온다. <중앙역>의 노처녀 도라는 사랑 받을 수 없는 인물이다. 호감도 가질 않고, 그 때문에 삶도 비뚤어졌다. 의외로 그런 여성이 주변에 많다. 한번은 29세의 여성과 술자리를 한 적이 있다. 자정이 넘어가는 데 걱정이 되어 집에 전화를 하라고 물었다. “남자하고 있으면 집에서 괜찮데요!” 그녀의 대답이었다. 우리는 자꾸 무엇인가 쫓기며 상실감에 사로잡힌다. 결국 남는 것은 외로움이다. 사랑을 받으려고 할수록 사람들은 떠나간다. ‘도라’가 여행 중 만난 트럭 운전수처럼 고백하려는 순간에 도망치듯 떠나간다. ‘도라’가 무엇보다도 두려워한 것은 ‘누군갗에게 잊혀진다는 것이다.

데뷔작인 <오버 더 레인 보우>(가제)도 비슷한 이미지다. 장르는 미스테리물이고, 배경도 다르지만 망각 속에서 기억을 더듬으며 쫓고 쫓기는 남녀를 다룰 예정이다. 시나리오도 완성되었고, 배우만 선정되면 오월 말쯤에 촬영에 들어간다. 덕분에 그는 불성실한 신입생이 될 예정이다. 그래서인지 자꾸 불안하다. 학교 생활도 불안하고, 영화를 평가받을 일도 불안하다. 하지만 키에르케고르의 말처럼 ‘불안’을 제외하면 우리가 살아있다는 증거를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그의 말대로 무지개 너머 ‘희망’이라는 것을 꿈꿀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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