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7호 [서평] ‘하위문화:스타일의 의미’ (현실문화연구), ‘하위문화는 저항하는갗
스타일의 저항적 의미 캐내는 하위문화연구의 만남

대학로, 신촌, 강남역, 화양리, 돈암동, 홍대입구 등은 청소년들이 많이 모이는 곳으로 유명하다. 작년에는 그들 청소년들의 일탈적 행동을 사실적으로 재현해서 화제가 된 ‘나쁜 영화’가 개봉되기도 했다. 어떻든 청소년들의 일탈은 대부분 비난의 화살과 함께, 그나마 이해의 수준에서 논의될 뿐이다. 이에 대한 사회적 시각은 범죄로 다스리면서 그 주체인 청소년들을 감시하고 처벌하려고 한다. 하지만 청소년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그 감시와 처벌의 그물망을 벗어나 탈주하고 있는 것도 현실이다. 우리가 통칭 ‘하위문화’라고 부르는 것들은 바로 그러한 경계 위에 서 있다. 즉 패션, 헤어스타일, 악세사리, 춤, 은어 등 다양한 스타일을 통해서 나름대로 의미를 창출한다고 말할 수 있다.

그렇지만, 90년대 이후 폭발적인 문화담론의 증가와는 달리, ‘하위문화’에 대한 논의는 폭과 깊이의 측면에서 모두 충분하지 못했다. 그 이유는 아마도 하위문화, 즉 청소년문화에 대한 피상적인 접근에만 그치고 체계적이고 깊이있는 연구가 진행되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항상 도덕과 윤리와 같은 잣대로 청소년문제를 접근하는 기성사회의 시각도 하위문화연구의 자유로움을 방해한 원인이었다. 그러한 예를 작년 ‘빨간 마후라’와 ‘일진회’ 사건 이후 청소년들에 대한 기성세대의 경직된 모습에서 엿볼 수 있다.

때마침 하위문화와 관련된 책들이 번역 출간되었다는 소식이다. 서구사회와는 많은 차이를 드러내는 한국사회에 적용하기에는 무리지만, 그나마 논의의 출발점은 될 수 있을 듯하다. 그 중에서도 하위문화연구의 고전이라고 일컬어지는 딕 헵디지(Dick Hebdige)의 <하위문화 :스타일의 의미(The Meaning of Style)>(현실문화연구, 이동연 옮김)는 하위문화연구에 있어서 필독서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에서 헵디지는 하위문화적 스타일에 관심을 둔다. 저자는 그 스타일을 브리콜라지(bricolage)로 보고, 그것을 명백한 의도성을 지닌 저항적 코드로 읽으려고 한다. 역자에 따르면, 그것은 “지배문화에 대해 ‘개입해서 저항하는’(on and against) 방식”이다.

그러한 저항의 방식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나타나는가. ‘하위문화’(subculture)는 기본적으로 서구청년문화로 대표된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하위문화는 부모문화와 지배문화를 거부한다는 점에서 이중접합의 특성을 지니며, 나아가 그 거부행위는 ‘세대의식’과 ‘계급의식’을 동시에 드러낸다.
이에 대해 역자는 하위문화의 특징을 크게 세 가지로 정리하고 있다. 첫째는 고정된 것이 아니라 ‘가변적이고 생성적’이라는 점, 둘째는 전통적인 이분법적 사고에 갇힌 저항방식의 해체, 셋째로 사회행위에 대한 도덕적, 윤리적 가치가 애초부터 고정되지 않는다는 점 등이다.
헵디지의 책이 6,70년대의 하위문화연구에 대한 완결된 저서라면, <하위문화는 저항하는가>(문화과학사, 이동연 편)는 그 이후 8,90년대 하위문화연구의 논문들을 모아서 번역한 것이다. 하위문화 개념에 대한 논의에서부터, 노동계급 하위문화, 소녀와 하위문화, 중고 의류시장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주제를 담고 있다.

위의 책들이 출간되면서 하위문화연구는 활성화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문제는 항상 ‘지금 여기’에 있다. 한국사회에서 청소년을 중심으로 하는 하위문화는 어떻게 해석하고 의미화시킬 것인가. <스타일의 의미>의 역자 역시 비슷한 문제를 제기한다. “최근의 청소년 일탈문화와 스타일의 반란이 6,70년대 서구 청년문화의 그것과 비슷한 지점에 있는갚하는 것은 단지 “표피적인 스타일의 복제나 상품형식의 한 변종에 불과한 것이 아닌갚하는 문제의식과 맞닿아 있다. 또한 “설사 하위문화 현실의 존재를 인정한다 해도 하위문화의 담론적 연구가 얼마나 하위문화적인 비담론적 현실을 견인할 수 있는갚하는 문제는 연구자들이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과제이다. 한국사회에서 청소년들에 대한 억압적 구조가 상당부분 도덕과 윤리와 같은 ‘가부장제 유교 이데올로기’에 기대고 있다는 점에서 볼 때, 우리사회의 하위문화는 계급적 측면보다는 세대론적 갈등이 더욱 심각하다고도 볼 수 있다.

‘하위’(sub)라는 말에서 나타나듯이, 하위문화는 중심/주변, 지배/피지배, 기성(부모)/청년, 이성애/동성애, 백인/유색인 등의 구분에서 철저하게 후자의 입장을 취함으로써, 지금까지 억압받고 소외된 열성의 역사를 지칭한다.
하위문화의 스타일에서 의미를 발견하는 작업은 비가시적인 형태의 무의식을 표면으로 끌어올리는 것이다. 침묵이 부재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듯이, 의도하지 않았다고 해서 그 자체가 아무런 의미도 없다고 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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