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7호 [사회비평] 세계 금융공황의 현실성 진단과 한국의 금융위기
2003-04-04 13:40 | VIEW : 28
 
107호 [사회비평] 세계 금융공황의 현실성 진단과 한국의 금융위기

신용, 과연 세계금융공황 부활의 주술사인가

백일 / 중앙대 강사 --경제학


과연 세계금융공황은 임박했는가. 미국계 신용평가기관인 무디스사의 신용판정이 엔(円)화에까지 영향을 미쳐 아시아지역의 통화·신용위기가 더 악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증권시장과 환(換)불안으로 표출되는 금융공황의 사전징후는 세계 도처에서 발견되고 있으며, 경제회복이 발등의 불인 한국경제로서는 국내외의 금융위기가 진정될 것인가, 세계 공황으로 비화될 것인가가 관심의 초점이 아닐 수 없다.


동아시아 금융위기, 음모인가 거품인가

세계금융공황을 예견하는 징조들은 증권시장 동향, 자본시장 및 이자율 변동, 실물경기동향, 통화 및 환시장 동향에서 관찰된다.

금융공황은 통상 주식가격의 폭락, 증권시장의 붕괴(1929년 대공황, 1987년 1차 ‘검은 월요일’ 등)로부터 시작된다. 증시공황의 사전징후는 폭락직전의 비정상적 폭등으로 예견되곤 한다. 1997-1998년간 뉴욕증시는 폭락(제2차 ‘검은 월요일’, 1997. 10. 27)·폭등의 폭(20%)과 주기가 크고 빠르기 때문에 공황직전의 상황과 흡사하다. 뉴욕증시의 폭등은 아시아 각국의 통화위기로 인한 투자자본의 탈아시아경향과 미국 실물경제의 안정적 성장의 영향으로 분석된다. 그러나 실물경제의 성장률(1997년 GDP성장율 3.8%)을 초과하는 투기성자본의 유입이 두드러지기 때문에 이 호황은 안정적이라고 말할 수 없다.

제2차 ‘검은 월요일’의 진원지는 홍콩의 증시폭락으로 알려져 있고, 홍콩 증시폭락은 아시아 통화위기와 연계된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이것은 주요투자가 아시아지역에 집중되었던 1990년대 세계금융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아시아지역에 대한 은행대부(1997년)를 살펴 보더라도, 3천8백94억불(한국 1천34억불)의 규모로 세계주요은행대부의 37%를 점하고 있어서 중남미지역 대여율을 훨씬 상회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통화위기 이후, 생산부문의 해외추가투자는 더 이상 진행되지 않고 있으며, IMF 지원금융 및 금융시장 불안정과 고금리를 노리는 단기투기성자금이 유입되고 있는 실정이다.

현대 금융의 주요한 특징은 증시와 환이 연동한다는 것이다. 환시장의 영향력 강화는 물론 국제교역 및 금융거래의 증가에 따른 것이다. 최근 아시아지역의 통화가치 하락은 한국·일본 50%, 인도네시아 46.4%, 태국 39% 등 기록적이며, 아시아 및 일본에서 증시붕괴로 인한 투매가 발생하면, 폭등한 뉴욕증시가 즉각 이에 영향을 받을 것이다.

통화가치는 외환보유고에 영향을 받으나, 세계최고 외환보유고를 기록하고 있는 일본(1997년 2천3백억불 추정), 홍콩(9백65억불 추정) 등도 평가절하를 당했기 때문에 투기성자금(헤지펀드 1조5천억불 규모로 추정)의 조작(음모론)과 거품경제론(아시아지역 실물경제의 위기는 과도한 통화발행 등에 기인한 고성장·경기확장정책, 이른바 거품경제의 붕괴에서 기인한다는 입장) 등이 등장하였다. 아시아지역의 위기가 지역내부의 거품에서 기인하는 것인지, 세계 금융자본의 투자집중과 이탈에 의해서 조작되었는지는 보는 각도에 따라 시각을 달리할 것이다. 그러나 원인규명 논란과는 별도로 문제는 주력기업들의 도산과 과도한 이자부담으로 적어도 단기간내에는 아시아지역의 회복전망이 좋지 않다는 데 있다. 따라서 세계금융공황의 주요한 초점은 아시아지역이다. 현재 예상할 수 있는 금융공황의 경로는 대략 두가지이다. 하나는 아시아지역 파탄-투자자본의 부실채권화-세계 금융자본 도산의 과정이며, 다른 하나는 아시아지역 평가절하·구매력약화-일본경제 침체 및 미국 무역적자증가-통화위기-고금리·생산위축-기업 및 금융도산의 과정이다.

아시아지역 경제회복의 관건은 원리금 탕감이 가능하나 수준의 생산회복 및 이윤생산, 즉 지불해야할 외채원금 및 이자율의 고저가 아니라 이자지불능력이다. 한국은 아시아의 IMF 지원국가 중 경제규모(세계 11위), 외채규모, 기술수준 및 신용등급이 최상위이므로 한국의 이자지불능력 여부가 관심의 초점이다. 한국이 이자지불능력이 없다면 다른 나라는 더 말할 나위도 없는 것이다.

한국의 공식적인 외채규모(1997년말)는 1천6백억불, 순외채는 5백57억불로 추정(해외현지금융제외-4백억불 이상 추정)된다. 단기성 외채는 1-3년의 중기로 대부분 연기되었다. 이자율은 리보금리 이상인 6-9%(외평채기금이자율)로 과도하며, 갚아야할 이자액은 연 평균 2백억불(1998년 1백50억불, 2000년 2백10억불 추정), 갚아야할 원리금은 연평균 5백억불 이상이다.

한국의 이자지불능력을 결정하는 것은 총자산가치, 무역수지흑자 (1998년 50억불-2백50억불 흑자추정, 1/4분기 현재 1백9억불 흑자)와 환율안정에 따른 원리금부담감소, 추가외채규모, 외평채액수(40억불-90억불)다. 그러나 IMF 프로그램하에서 주식·부동산·통화가치의 동반하락에 따라 총자산가치는 통화위기 이전 수준에 비해서 50%이상 삭감(GDP평가에도 적용)되었다. 1998년 무역수지흑자는 환율폭등에 의한 비정상적 수입축소(전년대비 35.5%감소)의 영향이므로, 원자재재고량(주력 수출품목은 원자재수입비중이 높은 중화학제품)이 문제되는 6월부터 무역수지가 조정될 것이다.




미국의 금융패권주의

부(負)의 성장율, 고금리에 의한 생산위축(가동율 69%), 기업의 과도한 부채(30대기업 평균 부채율 518%, 기업총부채 1천조원 추정)와 부동산·주식 등 주요자산가치 폭락에 의한 부실여신의 증가(은행부실여신 1백조원 추정)와 신용위험, 이윤 격감(97년 상장사 4조5천억 적자, 환율부담에 의한 수출업계 채산성 악화), 비생산적 자본·투기성 해외투자자본의 유입(총유입자본중 증시유입 98%)에 의한 증시불안정 및 잉여(주식매매차익 등)의 해외유출, 환방어를 위한 기본외환보유고 확보 때문에 1998년 한국경제의 이윤생산은 불가능하며, 따라서 원리금상황을 전적으로 새로운 외채 유입과 연장에 의존하는 악순환이 예상된다. 이처럼 채권국 위주의 단기신용연장에 주력하는 IMF 프로그램하에서는 장기적으로 채무국 경제전체가 압박될 것이며, 단기연장책에만 주력하는 한국의 무능한 대책이란 마찬가지로 장기적으로 무능력할 것이다. 결론적으로 IMF 프로그램하에서 한국의 외채부담은 국가능력밖이다. 그간 IMF 프로그램을 통해서 회복된 국가가 전무하다는 사실은 아시아지역의 장기침체전망을 예고한다.

지금까지 세계금융자본은 미국자본의 독주를 주축으로 유럽과 일본이 각각 지분을 확장하는 구도였다. 그러나 일본이 하락하고 유럽연합(EURO)이 대두하고 있는 현황은 많은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일본은 1980년 이후 축적된 1조2천억불 가량의 순잉여액을 바탕으로 동경증시(세계 2위, 시가총액 3조5천4백53억불, 1995년), 세계 10대 거대은행(도쿄·미쯔비시은행, 스미모토은행 등) 등 세계금융자본의 한축으로 성장하였다. 그러나 일본의 이른바 아시아펀드 구상은 아시아지역이 대거 IMF체제화 하면서 무산되었다. 그리고 일본 금융자본의 독자적 세력구축은 유보되기에 이르렀다. 1993년 이후 주가지수 및 부동산폭락, 부실여신(6천억불 추정), 통화절하 등 주요 금융자산이 가치폭락하여, 일본의 금융자본은 전체적으로 급속한 붕괴과정을 겪고 있다. 일본이 회복되지 않는다면, 세계금융은 달러와 유로로 상징되는 양극체제로 재편될 가능성이 크다.

유로가 어느 정도의 경쟁력을 발휘할 것인지 불분명한 상태에서 IMF체제의 확산은 확실한 미국의 금융패권 확대로 틀림없이 귀결될 것이다. 금융패권이 확대되는 경로는 IMF체제 확대와 초거대은행합병(1위 CITY그룹자산 6천9백75억불)의 두가지이다. 그러나 현재 미국의 금융패권은 신용축소에 대처하는 불가피한 선택으로서 신용확대를 추진하고 있어서 전후 미국의 강력한 금융패권인 브레튼우드체제와는 그 위상이 다르다. 오늘날 미국의 달러 및 주요채권은 세계 도처에 흩어져 있으며(일본 4천억불의 채권 보유), 미국의 초거대은행들의 주고객 대상 역시 세계 도처에 존재한다. 분명한 점은 현재의 IMF체제란 지불유예를 방지하기 위한 임시조치로서 정상적인 금융거래일 수 없다는 것이다. 실물경제에 근거하지 않은 신용확장은 신용위기의 근본대책이 아니다. 공황기의 고금리는 금융자본의 투기성을 극대화하지만, 생산자본이라는 이자제공자를 파산시킨다. 금융패권이 강하면 강할수록 신용위기는 고조되는 것이다. 이것이 모순이다. IMF 당사국들의 생산자본들이 회복되지 않는 경우, 지불유예는 확산될 것이고, 세계금융은 순식간에 붕괴될 것이다. 이처럼 경쟁자본의 도전과 채무 불이행이 미국의 금융패권을 취약하게 하는 배경이다.




세계금융공황의 현실성과 신용위기

세계 신용붕괴의 가능성을 종합해 볼 때, 아시아지역의 이자지불능력과 일본의 신용붕괴가 세계신용붕괴의 도화선이 될 가능성이 높다. 또한 미국경제 내부의 불안정 역시 새로운 도화선으로 작용할 수 있다. 미국경제에 있어서 1조4천억불(1997년)에 달하는 순부채와 4조불 정도의 누적재정적자는 여전히 커다란 부담이다. 달러화의 평가절상은 무역적자폭을 확대(97년 1천6백억불 적자 추정)시킴으로서 미국의 생산자본의 경쟁력을 압박할 것이다. 금융자본은 지나치게 비대화(세계 부채 10조불 이상 추정, 뉴욕증시 시가총액 5조6천5백40억불, 1995년)하여 금융공황시 거시정책적 통제력이 발휘될지 의문이다. 호황의 막바지에는 항상 공황이 고개를 들곤 한다. 미국 증시과열이 세계적인 경계의 대상으로 주시되고 있는 이유는 이와같은 연유에서이다.

결국 신용이 세계 도처에서 파괴되고 있다는 것은 세계 금융공황이 이미 진행중에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앞으로 초점이 되어야할 문제는 세계 금융공황이 새롭게 복구될 것이냐 아니면 공황의 종착역으로 전진할 것이냐를 판단하는 것이다. 그러한 갈림길이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 여부는 채권국 위주로 계획된 IMF 프로그램의 변화의지에 달려있다. 현재 진행중에 있는 신용위기의 본질을 IMF 및 금융자본들이 외면하고 단기적인 이자추출에만 탐닉한다면, 세계의 신용위기는 더욱 악화될 것이다. 1980년대 남미국가들이 지불유예상태에 처했을 때 IMF 당사국들이 선택했던 최후의 카드는 탕감책이었다. 이는 자본주의 체제에 군림하고 있는 신용의 마지막 묘비명이 과연 무엇인지 잘 보여준다. 신용은 이자를 머금고 끊임없이 팽창한다. 이자의 창출은 신용의 끊임없는 탐욕의 대상인 셈이다. 그러나 IMF 체제하의 대다수 나라들은 더 이상 이자지불능력이 객관적으로 부족한 상태에 직면해 있다.
저작권자 © 대학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