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8호 [사회비평] 1기 노사정위원회 합의와 그 이후
2003-04-04 13:40 | VIEW : 30
 
108호 [사회비평] 1기 노사정위원회 합의와 그 이후
No死정위원회,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

방현석 / 소설가



세계노동절을 맞은 지난 5월 1일, 서울 도심에서는 김대중정권 출범 후 처음으로 최루탄과 돌이 난무하는 격렬한 시위가 벌어졌다. 108주년 노동절 행사를 주관한 민주노총 이갑용 위원장은 당일 저녁 명동성당에서 즉각 기자회견을 갖고 “경찰이 먼저 합법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집회장 안으로 최루탄을 쏘고 예정된 평화행진을 방해하면서 상황이 야기되었다”고 정부를 비난했고, 이에 대해 김광식 서울지방경찰청장은 “집회 참가자들이 차도를 점거한 채 돌을 던지고 쇠파이프를 휘둘러 부득이 해산조치를 취했다”며 상반된 주장을 펼쳤다. 그러나 어느 쪽의 주장이 정확한지를 따지는 것 자체가 지금으로서는 무의미하다. 중요한 것은 바로 얼마전까지 80%에 달하는 지지율을 보이던 김대중정권의 지지율이 왜 급속히 하락하고 있으며 노동자들이 자신의 손에 돌을 들지 않으면 안되었는가 하는 점이다. 박지원 청와대 대변인에 따르면, 김대중대통령이 이날의 시위에 심한 충격을 받았으며 ‘법을 지키지 않는 노동운동은 결코 보호하지 않겠으며 불법 행위자는 엄단하겠다’는 것이 김대통령의 확고한 의지라고 말했다. 뒤이어 검찰과 경찰의 총수가 노동자들을 향해, 지난 수세기에 걸쳐 이 나라의 위정자들이 민중들을 향해 되풀이해왔던 추상같은 언어, ‘의법조캄를 엄명했다.

김대중 정권의 운명을 우려한다

참으로 우려스러운 상황이다. 필자가 우려하는 것은 노동자들에 대한 강경방침이 아니라 그것을 쉽게 말하고 있는 김대중정권의 운명이다. 모두가 알고 있듯이 지난 대통령선거에서 민주노총은 권영길 전임위원장을 독자적인 대통령후보로 출마시키고 조직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그러나 권영길 후보는 민주노총 조합원 50만명에도 훨씬 못미친 득표에 그쳤다. 김대중후보와의 정책연합을 천명한 한국노총은 물론이고 민주노총 조합원의 다수가 민주노총의 방침을 거스러면서까지 김대중후보에게 표를 던졌다.

김대중후보가 집권한다고 해도 노동자들에게 달라질 것이 없다는 민주노총 지도부의 주장보다, 그래도 김대중후보가 집권하면 그전 정권과는 달라질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에 조합원은 ‘마음으로는 권영길을 지지하지만 표는 김대중’을 찍었던 것이다. 김대중 대통령이 진실로 충격적으로 받아들여야 할 것은 이들이 돌을 던졌다는 사실 그 자체가 아니라, 이날 돌을 든 다수의 조합원들이 바로 몇 개월전에 그 손으로 김대중후보에게 기표했던 사람들이라는 점이다. 만에 하나라도 김대중정권이 ‘불철주야 나라를 건지기 위해 노심초사’하고 있는 ‘국민의 정부’을 향해 감히 돌을 던진 노동자들을 ‘괘씸’하게 여기고 엄단하겠다고 하는 것이라면 감히 단언하건데 김대중정권의 운명은 김영삼의 그것과 결코 달라질 수 없다.

1기 노사정위원회가 출범할 당시만 하더라도 노동자들은 김대중정권에 대한 기대를 결코 버리지 않았다. 한번도 오늘보다 못한 내일이 오리라는 것을 생각해보지 않고 살아온 우리 국민들 앞에 들이 닥친 IMF시대는 오늘보다 못한 내일에 대한 공포에 가까운 불안감을 안겨주었고, 모두가 고통을 나누어 이 어려움을 헤쳐나가야 한다는데 어느 누구도 반대하지 못했다. 책임유무와 이유여하를 떠나서 고통을 분담하자는 사회적 캠페인은 성공적으로 먹혀들었고 노동자들도 거부하기 어려웠다. 정권의 뜻을 거슬러본 경험이 없는 한국노총은 물론이고 민주노총 역시 노사정위원회에 참여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1기 노사정위원회의 ‘국민적 합의’의 결과는 노동자들를 분노시키기에 충분했다. ‘고통분담‘의 당초 캠페인 정신은 회의가 거듭되는 동안 깜쪽같이 실종되고 노동자들이 무엇을 더 내놓을 것인가만 협의의 초점이 되었다. 그 결과 노동자들로서는 일방적인 실직을 의미하는 ‘정리해고제’와 전 노동자의 일용직 용역화를 뜻하는 ‘근로자파견법’이 마련되었고, 지난 4월 22일 이갑용 민주노총 위원장이 김대통을 만난 자리에서 말했듯이 ‘노사정위원회에 참여해서 노동자만 피해를 봤다.’ 노(勞)는 고통만 있고 사(使)와 정(政)에게는 ‘룰루랄라’ 환희와 생색뿐인 노사정위원회였다.

노사정위원회가 이렇게 된데는 경험이 미숙한 노동조합의 지도부가 사회적 캠페인과 표리부동에 능숙한 사와 정을 이겨내지 못한 유약함이 결정적으로 작용했다. 어떤 단위 노동조합도 자신이 얻을 것은 없고 내줄 것뿐인 노사협의에 응하지 않는다. 그리고 사전에 명시적이건 정서적이건 조합원들과 합의된 선 이하로 지도부가 일방적으로 최종합의를 하지는 않는다. 노사정위원회의 노조측 대표들은 단위노조 활동에서 조차 기본적인 상식과 원칙을 상실하고 ‘국민적 합의’라는 사와 정의 캠페인에 압도당하고 ‘판을 깨지 말아야 한다’는 과도한 사명감으로 받아들이지 말아야 할 ‘정리해고’와 ‘근로자파견제’를 에누리없는 현찰로 내주고 사와 정으로부터는 ‘구조개혁’을 추진한다는 어음으로 받아았다.

빼도 박지도 못하게 구체적으로 명시해둔 단체 협약도 지키지 않는 것이 이 땅의 자본가들이라는 것을 너무도 똑똑히 경험으로 배워온 현장의 노동자들이 지급기일조차 명시되어 있지않은 재벌과 정치권의 ‘고통분담’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은 너무도 당연했다. 그리고 노동자들은 1기 노사정합의 이후 지금까지의 과정속에서 사회적 캠페인에 속았다고 받아들였던 자신들의 판단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너무도 똑똑히 확인할 수 있었다.

2기 노사정, 안길 곳은 어디에

1기노사정위원회에 참여하고 그 합의서에 동의했던 민주노총의 지도부는 조합원들의 격렬한 항의를 받으며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김대중 정권이 민중을 동정의 대상이 아니라 이 사회를 움직이는 중심이며, 민중의 마음을 잃은 그 어떤 정권도 행복한 말로를 맞이하지 못했다는 현대사의 교훈을 외면하지 않았다면 민주노총지도부의 교체를 최근 들려오는 데로 ‘노동운동의 주도권 다툼’으로 단순하게 받아들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노동자들에게 해고는 단순한 실직과 직장의 교체가 아니라 인생의 파산을 의미한다. 이땅의 노동자들은 산업화가 본격화 된 지난 60년대 이후 저임금 노동자원을 확보하기 위한 국가정책에 따라 정든 고향땅을 ‘돌 담길 돌아서며’ 울며 울며 억지로 떠나온 사람들이다. 신고와 간난 끝에 이제 겨우 자리를 잡고 남들처럼 살아가려는 그들을 강제로 추방하고 있다. 어디로 떠나라는 것인가.

실업자 2백만은 수치로 환산될 수 없는 파산된 인생과 가정의 숫자를 뜻한다. 그들은 일부가 아니라 자신의 모두를 내주고 말았다. 몇 개월의 실업수당, 그것은 아무런 정책도 없는 것과 다름없다. 노동조합을 해본 사람들이라면 노동자들이 얼마나 착한 지를 잘 안다. 그들은 자신이 최저생계비에 못미치는 임금을 받으면서도 자신들이 요구하는 임금인상으로 회사가 어려움을 당할까봐, 자기보다 회사를 먼저 걱정하는 그런 사람들이다.

지도부가 정확한 경영평가를 바탕으로 인상안을 내놓아도 깎는 것이 노동자들이다. 바로 그들이 지도부의 결정을 뒤집고 그 지도부를 사퇴시켰으며, 그래도 기대를 걸고 김대중 후보에 기표한 바로 그 손에 돌을 들고 김대중 정권을 향해 던졌다.

1기에서 노동자들의 고통전담으로 끝난 노사정 위원회의 2기가 계속되어야 할 이유가 있다면 단 하나, 고통에서 제외된 재벌과 정치권의 지체없는 혁파를 통해서 이미 김대중정권으로부터 떠나고 있는 민중들의 마음을 위로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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