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5호 [시사기획] 신자유주의와 세계민중운동- ③멕시코 민중운동: 사빠띠스따
2003-04-04 13:58 | VIEW : 38
 
115호 [시사기획] 신자유주의와 세계민중운동- ③멕시코 민중운동: 사빠띠스따
전세계의 사빠띠스따여, 서로 물어가며 함께 걸어가자!

이원영/정치철학연구가


1994년에 봉기하여 지금까지 '통제도 배제도 없는 자율적 삶'의 보장을 요구하면서 멕시코 정부와 정치적·군사적 대치를 계속하고 있는 치아빠스 원주민들의 투쟁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다시 생각하게 한다. 그것은, 광범위하게 선전된 우파의 주장과는 달리 자본주의가 여전히 아래로부터 도전 받고 있으며 역사는 계속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치아빠스 봉기가 1992년 로스앤젤레스 반란의 확산이자 지속이라는 주장은 결코 근거 없는 이야기가 아니다. 또 그것은, 변혁의 중심 주체는 공장 노동자이며 농민은 그 동맹군에 불과하다는 좌파의 정통적 관념의 한계를 보여 주었다. 원주민 농민은 봉기의 당당한 주체가 되어 이웃의 원주민들, 학생과 지식인들 뿐만아니라 지구상의 광범위한 노동자들을 연대와 지지의 대열로 이끌어 냈다. 그리고 이중권력은 일시적이며 오래 유지될 수 없다는 레닌의 생각은, 간헐적으로 가해진-특히 멕시코 경제위기가 재연되기 시작한 97년 12월 이후 최근까지 수개월에 걸쳐 집중적으로 가해진-정부군의 대대적 군사공격에도 불구하고, 때로는 무장전투로 때로는 시위와 선동으로 때로는 침묵으로 항쟁하면서 무려 5년여의 긴 기간동안을 지속되고 있는 치아빠스의 원주민 자치권력 앞에서 중대한 시험에 직면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지구상에서 지리적·사회적으로 고립되고 정치적으로 배제되어온, 그리하여 멸종의 위기에 처했던 소수 원주민 농민들의 투쟁이 이토록 강력한 힘과 광범위한 파급력을 갖게 된 것은 무엇 때문일까? 이 질문에 대한 제대로 된 해답을 얻기 위해서는 다방면적이고 심층적인 분석이 필요할 것이지만 그것은 본고의 주제를 넘어선다. 이 글에서 나는 다만 그 힘과 파급력의 한 요인으로 사빠띠스따들의 성공적인 네트워크 활용에 주목해 보고자 한다.

사이버 인터내셔널(?)
1989년 천안문 사태 당시 중국의 학생들은 인터넷을 통해 자신들의 투쟁을 국외로 알렸고 1991년 러시아 시민들은 매체 보도의 억압에도 불구하고 인터넷을 통해 쿠데타 시도에 관한 소식을 외부로 알렸다. 이러한 앞선 경험들 위에서 사빠띠스따들은 자신들의 투쟁 대의를 알리고 세계의 대중들에게 지지를 호소하며 자신들의 투쟁을 지구 무대로 유통시키는 수단으로 인터넷을 활용했다. 이 덕분에 봉기의 바로 첫날부터 사람들은 EZLN의 선언서들, 후속 커뮤니케들을 읽을 수 있었고 거기에 공감한 사람들이 멕시코 정부의 억압적 조치들에 대항하여 신속하게 결집할 수 있었다. 멕시코 군이 치아빠스로 쳐들어갔을 때 세계의 인권 운동 대표자들, 여타 지역의 원주민 대표자들, 외국 신문과 잡지, 라디오, 텔레비전의 기자들 역시 치아빠스로 몰려와 정부군의 잔악한 행동들을 보도했고 멕시코 정부의 억압 조치를 규탄하는 항의 시위들은 멕시코를 넘어 북미, 그리고 유럽으로 확산되어 나갔다. 전투 개시 후 얼마 되지 않아 정부가 협상 테이블로 물러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은 바로 이 투쟁 소식의 신속한 유통과 지지 동원의 광범함 및 신속함 때문이었다.

그러나 투쟁 유통의 이 광범함과 신속함은 아무런 노력 없이 인터넷 테크놀로지가 갑작스럽게 제공한 어떤 선물인 것처럼 생각되어서는 안 된다. 사빠띠스따 투쟁의 이 신속한 유통은 봉기 이전에 구축되어 있었던 네트워크들을 고려할 때에만 제대로 이해될 수 있다. 당시에는 NAFTA에 대항한 수년간의 조직화의 결과로 언제든지 반응할 역량을 갖춘 국제적 네트워크가 이미 준비되어 있었다. 캐나다, 미국, 멕시코 내에서 성장하고 있었던 풀뿌리 그룹들의 연합들, 예컨대 자유무역에 반대하는 멕시코 행동 네트워크 같은 것이 바로 그것이다. 이들은 컴퓨터 통신을 그룹들과 개인들의 빠른 의견 공유를 위한 기본적인 정치적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었다. 이 외에도 반(反)NAFTA 운동과 단지 부분적으로만 중복되어 있었던 멕시코 내의 또 다른 지역들에 자기조직적 네트워킹이 존재했는데 깜뻬시노들과 원주민들의 네트워크들이 그것이다. 1990년(제1차)과 1993년(제2차)에 개최된 '전 대륙 원주민 대회'가 보여주듯이 봉기 이전에도 이들은 EZLN 외부에서 그리고 치아빠스를 넘어선 지역에서 학교, 깨끗한 물, 자신들의 토지의 반환, 국가 억압으로부터의 자유 등을 쟁취하기 위해 싸우고 있었다.

사빠띠스따들의 핵심적 역할은 이 준비된 네트워크들이 신자유주의에 대항하는 국제적 운동으로 결집되도록 하는 촉매를 제공한 것이다. 1996년 1월 사빠띠스따가 발의하여 1996년 7월에 5개 대륙 42개 나라에서 3천명 이상의 활동가들과 지식인들이 참석하여 치아빠스에서 열렸던 '신자유주의에 반대하고 인류를 지키기 위한 제1차 대륙간 회의'와 1997년 여름 스페인에서 개최되어 세계 각지에서 약4천명의 활동가들을 불러모은 '제2차 대륙간 회의'는 투쟁의 국제적 유통의 새로운 사례로 기록되었다.

이 두 번에 걸친 대륙간 회의 중에 나온 선언문들을 통해 사빠띠스따들은, 신자유주의가 전 인류를 대상으로 새로운 세계 전쟁을 벌이고 있고 신자유주의가 지배하는 세상은 인간이 살기에 적합하지 않다는 인식에 기초하여, 이 공포의 인터내셔널에 맞서는 희망의 인터내셔널을 제기한다. 그것은 존엄성, 희망, 삶을 기치로 신자유주의의 불행, 공허, 죽음에 맞서는 인터내셔널이다.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전반까지 부침했던 인터내셔널들은 주로 당들의 인터내셔널이었지만 이 새로운 인터내셔널은 모든 개인들, 그룹들, 운동들, 사회조직들, 정치조직들, 주민연합들, 비정부조직들, 부족들, 원주민들, 학생들, 예술가들, 지식인들, 동성애자들, 페미니스트들, 평화주의자들 등이 조건 없이 비위계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인터내셔널로 구상되었다. 그것은 신자유주의가 제시하는 경쟁, 굴종, 죽음에 대항해 '이제는 그만!(Ya Basta!)'이라고 말하기 시작한 사람들, 스스로를 포기하지 않고 어려움을 각오하면서 투쟁하기로 결정한 사람들의 인터내셔널이다.

그것은 어떤 하나의 중앙에서 시작하지 않고 세계 전역에 존재하는 무수한 저항들, 반란들로부터 시작한다. 사빠띠스따들은 이전의 인터내셔널들이 내세웠던 세계 혁명의 프로그램들, 앞으로 도래할 사회에 대한 유토피아적 기대들, 참여자들에게 지위와 과제, 직함과 무노동을 보증해 줄 조직그림 따위를 제시하고자 하지 않는다. 그것은 권력의 거울 이미지들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 대신 사빠띠스따들은 스스로 발언하기를 주저치 않으면서 타인들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울림들과 목소리들의 네트워크를 제안한다. 왜냐하면 바로 이 울림들과 목소리들 속에 오늘날 인류가 부딪혀 있는 실질적인 장벽을 깨는 구체적 힘들이 내재해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들이 국제적 당이나 국제적 노조보다 대륙간 네트워크 형식을 주장한 것은 이 형식이 신자유주의 모델의 가변성과 신축성에 대응할 수 있는 모델이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신자유주의는 자신에게 반대하는 모든 것을 순응시키고 흡수하면서 인류를 인종, 성, 직업, 지위, 국적, 피부색, 성적 선호 등에 따라 원자화시킨다. 쟁점을 주요한 것과 부차적인 것으로 갈라 위계화하면서 투쟁을 단일한 전선에 집중시키는 수단이었던 지금까지의 낡은 조직 형식들은 신자유주의의 유연성과 가변성에 대응하기 어렵다. 복수의 구체적 전선에 열려 있을 수 있는 개방성을 지니면서 신속하게 투쟁들을 배치할 수 있고 유지비용도 적게 드는 네트워크만이 현단계 자본주의 체제의 지배적 현실과 대결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이 될 수 있다고 사빠띠스따들은 주장한다.

이 네트워크는 민중에 의해 항상적으로 구축되는 과정에 있으면서 수평적 관계 속에서 인류의 다양한 저항 행동들을 연결시키고 소통시키는 그물망이 될 수 있다. 즉 그것은 나날의 실천에서 발생하는 자료들을 소통하는 정보의 네트일 뿐만 아니라 발생한 문제의 해결을 위한 투쟁들을 효율적으로 배치하는 방어와 행동의 네트가 될 수 있고, 나아가서는 대중의 생명력 있는 자기가치화 운동들을 축적하고 유통시키는 발견과 촉진의 네트가 될 수 있다. 사빠띠스따들은 자신들에 의해 이미 발견되고 연결된 네트워크를 결코 절대시하지 않는다. 그들은 현존하는 네트워크 환경 속에 들어오지 않은 저항과 변형의 실천들이 얼마든지 있을 수 있고 또 끊임없이 생성되고 있음을 전제하면서 유무형의 다양한 복수의 네트들이 각자의 자율성 하에서 서로 관계 맺을 수 있도록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네트전, 계급투쟁의 새로운 양식
자본주의를 변혁하고자 하는 운동들에서 다종다양한 투쟁들을 결집시킬 방법에 관한 문제는 늘 중요한 문제였다. 마르크스는 프롤레타리아 운동의 초기에 신문 편집과 비판적 이론을 담은 단행본 발간(정치경제학 비판)을 통해 분열된 혁명사상들을 통일시키고 코뮤니스트들을 일국당과 인터내셔널 등과 같은 조직 형식으로 결합시킴으로써 프롤레타리아 투쟁들을 촉진시키고자 했다. 레닌은 19세기 말 러시아 주요 지역에 광범하게 형성된 투쟁동맹들을 직업적 혁명가로 구성된 새로운 유형의 전위당으로 전화시킴으로써 러시아의 대중적 노동운동을 이끌어 나갈 지도력을 형성하고자 했고 이를 위해 신문(전국적 정치신문)을 중요한 수단으로 활용하고자 했다. 이를 통해 우리는 고전적 마르크스주의자들이 프롤레타리아 투쟁들을 조직하기 위해 당대의 첨단 매체를 이용했음을 알 수 있다.

오늘날 계급 구성의 변화와 테크놀로지의 발전은 노동자 계급의 조직화에 새로운 변형을 요구하고 있다. 노동자 계급은 이제 공장에만 가두어진 사회적 존재가 아니다. 오늘날은 농촌의 농민과 학생들, 지식인들, 정보산업에 종사하는 노동자들, 유통 영역에서 일하는 노동자들, 그리고 가정에서 일하는 주부들까지 프롤레타리아적 사회존재로서의 성격을 갖고 있다. 노동자 계급의 이러한 다양화, 다기화는 자본에 대항하는 투쟁의 다양성을 규정한다.
19세기와 20세기 초반에 진보적 역할을 수행했던 당 형태는 이제 노동자 계급 각 부분의 다양한 투쟁들에 위계와 질서를 부여하여 투쟁력을 분할하고 약화시키는 것으로 성격이 바뀌었다. 1968년을 전후한 시기 서구의 공산당과 사회당들의 투쟁 봉쇄적 역할은 그 뚜렷한 예증이다. 아직도 많은 노동자들이 자본과의 싸움에서 공장에서의 전통적 조직 형태인 노동조합에 자주 의존하고 있지만 그것의 중앙집권주의는 노동자 대중의 자발적 투쟁을 흡수하여 일정한 한계 내에 제한하는 것으로 작용하곤 한다.

바로 이 때문에 치아빠스 봉기 이후 세계의 수많은 좌파 운동 속에서 낡은 조직화의 형식들을 대체하여 네트워크적 조직 형태가 확산되고 있는 것은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퍼스널 컴퓨터의 광범위한 보급을 기초로 이른바 '사이버 공간'이 형성되면서 네트워크는 현실 공간뿐만 아니라 사이버 공간에까지 확산되고 이것이 다시 현실 공간의 네트워크를 촉진하는 되먹임 과정이 진행되고 있다. 웹 브라우징뿐만 아니라 메일링 리스트, 뉴스 그룹의 형성을 가능케 하면서 투쟁 정보를 광속으로 유통시키는 인터넷이 오늘날 대륙간 네트워크뿐만 아니라 크고 작은 다양한 네트워크 구축의 핵심적 수단으로 등장하고 있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물론 네트워크 운동에 대해서는 그것이 시장 모델의 운동적 투사로 될 위험이 있다거나, 사이버 공간에 참여하고 있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 사이에 새로운 위계를 형성시킬 위험이 있다거나, 인종·성·종교·임금수준·숙련도·민족 등 계급 내부의 내적 분할들을 극복하는 데에는 네트워크로는 한계가 있다는 등의 (자기)비판적 문제제기들이 없는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빠띠스따들에 의해 대규모로 실험되고 전 세계의 각종 운동들로 확산되고 있는 투쟁의 네트워크적 조직화 문제는 지금보다 더 큰 주목을 받을 가치가 있음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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