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9호 [시사포커스] 진보에 대한 새로운 전망 필요한 터
2003-04-04 14:00 | VIEW : 24
 
119호 [시사포커스] 진보에 대한 새로운 전망 필요한 터
진보에 대한 새로운 전망 필요한 터

호한용 / 편집위원


우리사회의 가장 커다란 사회적 이슈는 무엇보다도 ‘실업’이다. 그간 노동운동 진영에서 추진한 중심적인 투쟁방향 역시 ‘실업자운동’이었고, 이는 ‘노동시간 단축투쟁’이라는 형태로 전개되고 있다. 이 논리는 간단하다.
우선, ‘노동시간 단축’은 ‘법정노동시간 단축’이라고 표현해야 할 것이다. 여기에서, ‘법정노동시간 단축’이라고 하는 것은 이 요구사항의 협상이 ‘작업장 수준’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수준’에서 이루어지는 것임을 지칭한다. 즉, “모두들 옆에서 굶주리는 실업자를 위해서 조금 일하고 그만큼 임금을 적게 받자”는 식의 ‘무노동 무임금’이라는 논리라기보다는 ‘사회적 차원의 타협’을 의미하는 것이다. 따라서, ‘노동시간 단축’은 ‘실질임금 삭감없는 노동시간 단축’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실질임금 삭감없는 노동시간 단축’이라는 의미는 몇 가지 점에서 한계를 갖고 있다. 현재 노동운동으로 전개되고 있는 양상도 그렇지만, ‘노동시간 단축투쟁’이 내걸고 있는 명분은 “일할 권리를 달라”는 것이다. 구조적 실업을 해결하고 고용안정을 이룩하는 것이다. 물론, 이는 서구복지국가 모델을 지향하는 것이다.

그러나 앙드레 고르즈가 주장하듯이, 서구의 복지국가는 “시민들을 단지 국민보험의 가입자, 납세자, 연금수혜자 등으로서 사회적 국가주의의 정책의 대상”으로 전락시켰을 뿐이다. 즉, 시민들 각자가 자율적인 문화적 주체로 성장하여 활기있는 공동체를 형성하기보다는, 끊임없는 수혜의 늪에 빠져들 수밖에 없는 노예로 전락시킨다는 것이다. 어찌보면, 서구의 복지국가가 재정위기에 허덕일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여기에 있지 않을까 한다.
따라서, 고르즈가 주장하고 있는 것은 “훌륭한 생활예술과 창조성의 혁신적 형태가 발명될 수 있도록, 노동에 기초한 생산주의적 사회에서 자유시간 사회로의 이행”을 수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즉, ‘노동사회에서 문화사회(Kulturgesellscgaft)로의 이동’을 주장하는 것이다. ‘필연의 왕국’에서 ‘자유의 왕국’으로의 이동이라고 할까.

이렇게 볼 때, ‘노동시간 단축’이 갖는 의미는 달라질 수 있다. 단적으로 말해서, ‘노동시간 단축’의 궁극적인 의미는 ‘구조적 실업해결과 고용안정’이라기보다는, 노동시간을 단축하여 얻은 자유시간을 통해 ‘개성의 자유로운 자기실현’을 할 수 있다는 점이다. ‘더 짧은’은 노동시간은 ‘더 길고, 더 다양한’ 인간적 활동들을 수행할 수 있는 조건을 제공하는 셈이다. 따라서, ‘노동시간 단축투쟁’은 노동시간을 합리적·계획적으로 단축하기 위한 방안을 모색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인간의 문화적인 활동을 풍부화할 수 있는 정책의 계발 역시 동시적으로 진행되어야 하는 것이다.

결국, ‘노동시간 단축’이 지향하는 바는 ‘노동과정내에서의 해방’이라기 보다는 ‘노동으로부터의 해방’이라고 할 수 있다. ‘생산성’이라는 필연성에 의해 노예화된 인간을 어떻게 ‘자유롭고 인간다운’ 인간으로 형성할 것인가, 혹자가 지칭하고 있는 ‘노동거부의 사상’이 갖는 의미는 이러한 것일 테다. 과거 노동운동이 잉태했던 과오를 넘어서기 위해서는, 생산영역뿐만 아니라 재생산영역에서의 운동진영과의 적극적인 연대를 창출하기 위해서는, 진보에 대한 새로운 전망이 필요한 시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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